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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항상 기뻐하십시오!’ 대회: 일요일 오전 회기—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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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제 곧
음악 영상이
시작될 것입니다.
영상을 보시면서
우리가 지금 충실하면
미래에 더 큰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휴대 전화나
다른 전자 기기를
가지고 계시다면,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음악 영상을 즐겨 보실까요?
‘항상 기뻐하십시오!’
대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 회기는
대회 프로그램의
일요일 오전 회기에 해당합니다.
주제는
시편 37:4에 나오는
이러한 말씀입니다.
“여호와 안에서 더없이 기뻐하여라.
그분이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다.”
이제 함께 일어나서
노래 22번을 부르실까요?
“왕국이 세워졌으니, 오게 하소서!”
노래를 한 후,
시작하는 기도를 위해
영상을 잠시 멈추실 수 있습니다.
노래 22번입니다.
앉으시기 바랍니다.
힘든 시련을 겪을 때에도
기뻐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성경에 따르면
가능합니다!
오늘 일곱 부분으로 된
심포지엄에서는
여호와께서 어떻게
도와주시는지 설명합니다.
각 연사가
다음 연사를 소개할 겁니다.
먼저
교습 위원회 보조자인
케네스 플로딘 형제의
연설을 들어 보시겠습니다.
이 첫 연설의 제목은 이러합니다.
“시련을 겪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다
— 환난.”
프로그램을 보시면,
이 심포지엄 제목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시련을 겪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다는 표현이죠.
그걸 보면
어떤 시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반드시 기뻐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언뜻 듣기엔 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죠.
보통은 선물을 받을 때 기뻐하지
시련을 받을 때 기뻐하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사실,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시련에도
기뻐할 수 있는 건
여호와께서
선물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심포지엄에서
그런 세 가지 선물을
살펴볼 겁니다.
여호와와의 관계,
소중한 형제 자매들,
미래에 대한
놀라운 희망입니다.
그럼 함께
로마서 5:3-5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 구절에서
여호와와의 관계라는
첫 번째 선물에 관해
어떻게 알려 주는지
유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3절에서 5절.
“그뿐만 아니라,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도 기뻐합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승인받은 상태를,”
누구의 승인일까요?
여호와의 승인이죠.
또 “승인받은 상태는
희망을 낳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라고 했죠.
여호와와의 관계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네, 우리가 시련을 인내할 때
여호와의 승인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은 우리가 시련에도
기뻐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제 로마 8:38, 39을 보죠.
바울은 연이은 시련들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시련도
자신이 여호와에게서
멀어지게 하거나
그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다는 걸 확신했습니다.
여호와와의 관계가 튼튼했죠.
8:38, 39.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정부들도
현재 있는 것도 오게 될 것도
권세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시련의 때에 도움을 줍니다.
그럼 여호와께서 주신
두 번째 선물은 무엇일까요?
베드로 전서 5:9을 보시죠.
사탄은 우리가 겪는 시련을
이용하려고 하지만,
여기 9절에서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그러나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그를 대적하십시오.”
무엇이 도움이 될까요?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이 세상에 있는
연합된 모든 형제들도
같은 고난을[즉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연합된 형제들의 지원을
분명히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6개월 동안
그 점을 명확히 볼 수 있었죠.
그럼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호와의 세 번째 선물을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12:12에서
이렇게 분명히 알려 줍니다.
“희망 가운데 기뻐하십시오.”
계속 보시죠.
“환난 중에 인내하십시오.
꾸준히 기도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여호와와의 관계,
우리의 형제 자매들,
그리고 희망은
우리 각자가 처한 다양한 환경에서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한 가지 예로
감옥에 갇힌 형제는
형제 자매들과
연락이 끊겼을지 모릅니다.
그는 어디서 힘을 얻습니까?
여호와와 누리는 관계가
힘을 줄 것입니다.
JW 방송에 나온
해럴드 킹 형제를
기억하실 겁니다.
킹 형제는
중국 교도소에서
4년 반 동안
독방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혼자였습니까?
당국은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여호와 하느님께서
킹 형제와 함께 계셨습니다.
형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여호와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누리고 있었죠.
그분을 깊이 사랑했고,
그분은 제게 실재하는 분이셨습니다.”
네, 킹 형제는 하느님과
그처럼 좋은 관계를 누렸기 때문에
시련에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우울감에 시달리는
형제나 자매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때
또 다른 여호와의 선물이 있는데,
바로 형제 자매들이
베푸는 지원입니다.
힘겹게 숨을 쉬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살아 있긴 하지만
아주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의료 팀이 나타나
적절한 치료를 하자
그가 다시 정상적으로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울증이나
다른 심각한 시련을 겪을 때
형제 관계는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럼 어떻게 희망은
시련을 겪을 때도
기뻐할 수 있게 해 줍니까?
우리 중에는
연로해져서 예전만큼 활동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부모를 둔 분들이 계십니다.
시련이 되는 일이죠.
이런 예를 들어 보죠.
사랑하는 사람이
심한 사고를 당해
병원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의사가 와서
완전히 회복될 거라고 얘기합니다.
그럼 희망이 생기죠.
이처럼 우리의 연로한 부모에게도
확실한 희망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죠.
‘그들은 노년의 고통에서
온전히 회복될 거란다.’
네.
희망은 기뻐하게 해 줍니다.
우리가 그 어떤 시련을 겪더라도
이러한 여호와의 선물은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함께 로마서 8장을 보시죠.
로마서 8:35, 37입니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35절에 언급된
일곱 가지 시련을 살펴볼 것입니다.
무엇인지 함께 보시죠.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겠습니까?
(1)환난이나 (2)고난이나
(3)박해나 (4)굶주림이나 (5)헐벗음이나
(6)위험이나 (7)칼이겠습니까?”
이렇게 일곱 가지죠.
37절.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방금 본 일곱 가지 것들로부터]
우리를 사랑하신 분을 통해
온전한 승리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 심포지엄의 각 연설에는
동영상이 포함되어 있는데,
심각한 시련을 겪는
형제나 자매가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선물 중 어떤 것이
그들이 시련에도 기뻐할 수 있게
해 주었는지 알게 되실 겁니다.
바울이 언급한
첫 번째 시련은 환난입니다.
환난이란
힘겨운 상황에서 겪는
고통을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심각한 질병과 같은 것이 있죠.
함께 고린도 후서 12장을 보시죠.
고린도 후서 12:7, 8입니다.
바울은 그 환난이
너무나 괴로웠기 때문에
그것을
육체의 가시라고 불렀습니다.
고린도 후서 12:7, 8.
“내가 지나치게 우쭐대지 못하도록,
나를 계속 치는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천사가 나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나치게 우쭐대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주께 세 번이나 간청했습니다.”
“육체의 가시”라고 했으니까
분명 신체적인 질병이었을 겁니다.
또 계속 쳤다고 한 걸 보면
그 문제가 지속되었다는 걸 알 수 있죠.
그것은 며칠이면 낫는
단순한 감기와 같은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를 괴롭히는
만성적인 질환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의 증거에 의하면
바울은 계속해서
시력이 악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울에게
큰 시련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그는
이 육체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당시에는 안경을 써서
시력을 교정할 수도 없었고
안과 수술을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지속되는 환난이었습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은
성령을 통해 여러 번
다른 사람의
질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이런 의문이 들었을 수 있죠.
‘성령이 내 병도 낫게 할 순 없을까?
나도 병이 있는데.’
바울이 이런 환난에도 기뻐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습니까?
여호와와 계속
친밀한 관계를 누린 것입니다.
이번에는
고린도 후서 12:9을 함께 보시죠.
이 성구에서
여호와께서는 바울에게
기적으로 병을 치료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9절입니다.
“나의 과분한 친절이 너에게 충분하다.
나의 능력은 약함 가운데서 완전해지기 때문이다.”
기적적인 치료는 없겠지만,
환난에도 견딜힘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구절의 후반부에서
바울과 여호와의 관계가
어땠는지 알 수 있는데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의 약함에 관해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자랑하겠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천막처럼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호와의 힘 덕분에
기뻐했습니다.
10절을 보죠.
고린도 후서 12:10입니다.
“나는 약함과 모욕과 궁핍한 때와
박해와 어려움을
그리스도를 위해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환난의 한 가지 예를 다룬
동영상을 보시겠습니다.
심각한 질병으로
환난을 겪을 때에도
형제와 그의 아내가 기뻐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을까요?
지난 45년 동안 저는 파이오니아 봉사,
여행하는 봉사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은 베델 봉사를 했습니다.
전 건강이 아주 좋았어요.
어디가 아픈 적이 없었죠.
하루는 머리가 정말 깨질 것 같이 아팠습니다.
눈앞이 흐려지더니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죠.
베델 의사한테 갔더니
전문의를 만나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교모세포종이라는 진단을 받았죠.
악성 뇌종양이었어요.
다음 목요일 날 수술을 받았죠.
수술 후에는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동시에 받았어요.
1년 후에는 또 수술을 받았죠.
지금은 4차 항암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남편이 처음 아플 때부터 제게 가장 힘들었던 건
저와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거였어요.
하지만 우린 기쁨을 잃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형제들이 저희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어 주었습니다.
한 형제는 제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고는
제게 성구를 읽어 주고 함께 기도해 주었어요.
그때를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너무나 큰 힘이 되었죠.
제 아내 새라한테도 고마운 게 많아요.
새라는 제가 집회 준비하는 걸 도와줍니다.
함께 봉사에 나가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서 좋아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니까요.
베델에서 저는 봉사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형제 한두 명이 저를 찾아와
업무에 관해 의논하곤 하죠.
저는 이렇게 일하면서 큰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작은 일이나마 기여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저희가 이 모든 걸 견딜 수 있었던 건
남편이 겸손했기 때문이죠.
제가 가진 희망은 확고합니다.
저는 신세계가 올 때까지
여호와를 충실히 계속 섬길 겁니다.
그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요.
스콧 쇼프너와
새라 쇼프너 부부는
여호와와 좋은 관계를 누렸고
새라는 남편을
충실히 돌보았습니다.
그에 더해
여호와께서 주신
또 다른 선물도 있었죠?
스콧은
형제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수술 전에 한 형제가
성구를 읽어 주고 함께 기도해 준 일과
젊은 형제들이 찾아와
업무를 도와준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형제는 큰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환난에도 기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특정한 시련이나
환난 가운데서도
여호와의 어떤 선물이
여러분을 붙들어 주고 있습니까?
여호와와 누리는 관계입니까?
형제 자매들입니까?
희망입니까?
아니면 그 밖의 다른 것입니까?
환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기억하십시오.
여호와께서
마치 큰 모니터로 보듯
우리 마음속 고통을
자세히 살피십니다.
이렇게 보증하십니다.
‘안심하렴.
다 괜찮을 거란다.’
따라서 어떤 고통이나 환난에도
로마서 8:37, 39에 나오는
이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분을 통해
온전한 승리를 거두고 있습니다.”
39절.
어떤 것도 어떤 환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환난을 겪을 때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중앙장로회 성원인
새뮤얼 허드 형제가
이 심포지엄의
다음 연설을 할 것입니다.
주제는
“시련을 겪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다
—고난”입니다.
고난을 겪으신 적이 있나요?
만약 없다면 사람이 아니죠.
왜냐면 모든 사람은
현 세상에서
짧은 생애를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고난을 겪기 때문입니다.
고난이란 무엇입니까?
심한 걱정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슬픔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괴로움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고난을 일으킵니까?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것 하나는
배우자의 죽음입니다.
그다음 원인은
우리가 다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실직도 원인이 되는데,
‘어떻게 우리 가족을 돌보지?’
하는 걱정이 들 수 있죠.
또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왕국 전파 활동에
온전히 참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네, 고난의 원인에는
이러한 것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죠.
다른 것들도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만약,
여러분이 고난을 겪고 계시다면,
어떤 느낌이 드시겠습니까?
흔히 어떤 감정이 들까요?
슬픈 감정일까요?
우울한 감정일까요?
그렇다고 대답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어떤 분들은
기분이 쳐지고
낙담이 된다고 하시고,
그런가 하면
아무런 의욕이 없다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또 어떤 경우는
그냥 혼자서
울고 싶다고 하는 분도 있죠.
이렇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고난을 겪을 때도
기뻐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네, 가능합니다.
성경에 그런 사례들이
아주 많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 한두 가지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이 바로
그러한 예 중 하나인데요.
그는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했습니다.
감정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함께 성경을 펴서
고린도 후서로 가 보겠습니다.
고린도 후서를 찾아서
7:5을 읽어 보겠습니다.
7:5.
“사실 우리가 마케도니아에 도착했을 때에,
우리 몸은 편하지 못했고
모든 면에서 계속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그다음 표현에 유의해 보시죠.]
밖으로는 싸움이 있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밖으로는 싸움이,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죠.
바울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었고,
본인도 그걸 느꼈지만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어떤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까?
원래 바울은 트로아스에서
디도를 만나길 기대하고 있었죠.
그런데 디도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가 걱정이 되었죠.
혹시
디도와 고린도 회중 사람들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까?
바울은 알고 싶었습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친구로부터 소식을
기다리는데 답이 없다면
비슷한 심정이 들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너무나 걱정이 된 나머지
다소 우울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디도를 기다려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마케도니아에서
바울은 디도를 만났습니다.
바울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고린도 회중 사람들이
좋은 반응을 나타냈다는
디도의 보고를 듣고
바울은 더욱더 기뻐했습니다.
고린도 후서 7:6, 7에
나오는 표현을 보시면
그 점을 알 수 있죠.
바울은 형제 디도의
도움을 받은 것이죠.
우리도 형제들에게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마련하신
이 아름다운 형제 관계는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우리 형제들은 우리가
그 어떤 고난과 싸우고 있더라도
우리의 편에서
우리를 지원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 가운데는
낙담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낙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낙담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죠.
또 고난이 되는 것으로
사랑하는 사람, 특히 배우자와의
사별로 인한 고통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배우자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고,
여호와께서
에덴 동산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둘이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몸이 된 남편을,
또는 한 몸이 된 아내를
잃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분이 몹시 침울해집니다.
또 우울해지고,
낙담이 되고,
마음이 아프고 무거워집니다.
한마디로 슬퍼지죠.
하지만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시련을 겪을 때에도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기쁨과 힘을 잃지 않도록
세 가지 마련을 해 주셨습니다.
무엇이었죠?
첫 번째는
우리가 여호와와 누리는 관계입니다.
한 가지 예로,
다윗이 있습니다.
그 점을 살펴보기 위해
사무엘상 30장으로 가 보실까요?
제가 30장의
처음 몇 구절을 말씀드릴 때
눈으로 따라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상 30:1부터 내용을 보시면,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도시를 불태우고
그들의 아내와 자녀를
포로로 잡아갔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다윗의 두 아내도 잡혀갔죠.
따라서 기록에서 보시듯이
다윗은 심한 곤경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6절 끝부분을 보시면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하느님
여호와로 인해 기운을 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힘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데서 나옵니다.
그분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는 그분의 말씀인
성경에서 알려 주듯이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살펴본 것처럼
첫 번째 마련은
여호와와의 관계입니다.
두 번째는 형제 관계입니다.
형제 자매들은
참으로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시편 133편을 보면
이러한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보라! 형제들이 연합하여 함께 거하는 것이
얼마나 좋으며 얼마나 즐거운가!”
이 말이 정말 맞다는 걸
우리는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린
이 점도 알고 있죠.
사탄 마귀는
우리를 형제들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서 할 수만 있다면
우리를 감옥에 가두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여전히 형제들과 함께할 수 있죠.
형제들과 멀리 떨어져
철창 안에 수감되어 있는데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요?
추억을 되살려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진첩을 꺼내 보십시오.
실제 사진첩이 아니라
머릿속의 사진첩을 꺼내서
형제 자매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면
힘을 얻고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저처럼 나이가 든 분들은
공감하실 텐데요.
우리 나이대 사람들이
늘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뭔가 하기에는
너무 힘이 들기 때문에
추억을 먹고 산다고들 하죠.
그러면 기쁨이 생깁니다.
형제 관계라는
두 번째 마련이었고요.
세 번째는 희망입니다.
의로운 세상에서
영원히 여호와를 섬길 희망이죠.
영원이란 무엇입니까?
끝이 없는 것이죠.
시간이 가고 또 가도
계속되는 겁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시작도 끝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게 영원이죠.
늘 거기에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영원히 살면서
끊임없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음 동영상을 보면서
한 증인 부부가
고난 가운데서도 기쁨을 유지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처음에 결혼했을 때
우린 둘 다 아이를 갖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임신한 걸 알았을 때
진짜 꿈만 같았죠.
아내가 임신했다고 했을 때
갑자기 세상이 달라 보이더라고요.
이젠 아빠가 됐으니까요.
바로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죠.
아이한테 뭐든 다 해 주고 싶었거든요.
하루는
아내가 몸이 안 좋다고 해서
같이 병원에 갔어요.
그런데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해 보자고 했죠.
결과가 나왔는데
아기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데, 그냥 멍했어요.
꿈이길 바랐죠.
하루아침에 모든 게 다 끝났어요.
얼마나 좋아하고 기대하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다 끝났죠.
아이를 생각하며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어요.
근데 아이를 잃고 나니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만 같았죠.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을 것 같았어요.
뭘 해야 될지 몰랐어요. 근데
그날이 집회라 일단
집회에 가기로 했습니다.
여호와의 성령이 흐르는 곳에 있고 싶었죠.
저희 힘만으로는
도저히 그 고통스러운 순간을
이겨 낼 자신이 없었거든요.
여호와의 도움이 필요했어요.
소식을 들은 많은 분들이
저희를 위로하면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이야기해 주셨는데,
그게 정말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여호와께서 주신 소중한 친구들은
친형제보다 더 가까이서
저희 곁을 지켜 줬어요.
저희가 힘들어하는 걸
매번 어떻게 알고는
함께 기도해 주고,
함께 걸으며 얘길 들어 줬죠.
그 친구들을 통해
여호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어요.
기쁨을 되찾으려고
지금도 노력 중이에요.
개인 연구를 하면서
정말 힘이 되는 성구를 찾았어요.
시편 139편에서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 여호와께서
우릴 찾으실 수 있다고 알려 주죠.
우리가 아무리 어두운 곳에 있더라도요.
전 어둠 속에 파묻혀 있었죠.
하지만
그 성구를 묵상하면 다시 힘이 났고,
여호와께서 제가 조금씩 기쁨을 되찾게
도와주시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여호와께서 도우십니다.
우리는 절망에
빠져 있지 않습니다.
고린도 후서 4장을 함께 보시죠.
8절의 표현을
각주 표현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 후서 4:8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심한 압박을 받아도
꼼짝 못할 정도로 짓눌리지 않습니다.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해도
빠져나갈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각주 표현에 의하면,
“절망에 빠지지는 않습니다”라고 했죠.
여호와께선 우릴 절망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혹시 지금 정신적, 감정적 괴로움으로
고난을 겪고 계시다면
기쁨을 유지하는 데
여호와의 어떤 선물이
도움이 되고 있으신가요?
여호와와 누리는 관계입니까?
형제 자매들입니까?
희망입니까?
아니면 그 밖의
다른 마련입니까?
이 같은 여호와의 마련들에 더해
다음과 같은
실용적인 제안들도 적용해 보십시오.
건강에 좋은 식습관을 유지하십시오.
그에 더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십시오.
적당량의 운동을 하십시오.
그리고 두 개의 목록을 작성해서,
첫 번째 목록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두 번째 목록엔
당장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적어 보세요.
첫 번째 목록을 실천하고
나머지는 여호와의 손에 맡기십시오.
장로나,
부모나,
믿을 만한 가까운 친구에게
자신의 상황과 감정에 대해
털어놓으십시오.
그들은 곁에서 기꺼이 우릴 도울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기꺼이 우리에게 나누어 줄 것입니다.
아낌없이 그렇게 해 줄 겁니다.
정신적인 문제로
고난을 겪는 일부 경우엔
의사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누가 5:31에서
이렇게 지적하셨죠.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지만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합니다.”
물론 결정은 각자가 내려야 하지만
성경의 조언은 이러하죠.
의사와 같이 자격을 갖춘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호와의 승인을
얻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십시오.
단 한순간도
그걸 의심하지 마십시오.
물론
정신적, 감정적 괴로움을
극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여호와께선 여러분을 이해하시며
여러분이 계속 인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충성스럽게 인내한다면
여호와의 승인을 얻게 될 것이며,
그것은
가장 큰 기쁨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하느님께선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승인과 축복을 얻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감싸고 있는
큰 방패와 같습니다.
그 점을 생각하면서
기뻐하십시오.
고난 가운데서도
계속 기뻐하십시오.
이제 중앙장로회 성원인
게리트 뢰시 형제가
이 심포지엄의
다음 연설을 할 것입니다.
주제는,
“시련을 겪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다
—박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시작부터
박해를 받아 왔습니다.
함께
고린도 후서 11장을
찾아 보겠습니다.
바울은
많은 박해를 경험했는데요,
그는 자신이 겪은 박해를
고린도 후서 11:23-25에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보시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봉사자입니까?
내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말하는데,
나는 훨씬 뛰어난 봉사자입니다.
내가 일도 더 많이 했고,
감옥에도 더 여러 번 갇혔고,
매도 수없이 맞았고,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유대인들에게
40에서 하나를 뺀 매를
다섯 번 맞았고,
세 번 매질을 당했고,
한 번 돌로 맞았고,
세 번 파선을 당했고,
밤낮 하루를
드넓은 바다에서 보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겪은
많은 어려움들을 나열한 다음에
12:10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약함과 모욕과
궁핍한 때와 박해와 어려움을
그리스도를 위해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울이
박해 자체를 기뻐한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한 결과로 인해 기뻐했는데,
여호와의 주권의 입증에
기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빌립보서 1:14, 18을
읽겠습니다.
박해는
우리가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과
자신의 이름을 위해 행동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로 인해
좋은 증거가 이루어질 수 있죠.
빌립보서 1:14, 18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 안에 있는
대부분의 형제들은
내가 감옥에 갇힌 일로 인해
확신을 갖게 되었고,
더욱 용기를 내어
하느님의 말씀을
두려움 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18절.
“그렇지만 결과는 어떠합니까?
가식으로든 진실로든
결국은 온갖 방법으로
그리스도가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일로 기뻐합니다.
사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기뻐할 것입니다.”
또한 박해는
여호와와의 관계와 우리의 희망을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바울은 로마서 5:3, 4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도 [크게] 기뻐합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승인받은 상태를,
승인받은 상태는
희망을 낳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분명 희망은
우리가 박해를 인내하는 데
큰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다양한 문맥에서
“희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구원의 희망”이라는 표현은
영적인 구원을 가리키는 말이죠.
아마겟돈을 생존할 희망도 있고,
이 땅의 낙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희망도 있고,
불멸의 생명을
하늘에서 누릴 희망도 있죠.
바울은 로마서 5:3, 4 에서
어떤 희망에 관해 말한 것입니까?
바로 하늘의 희망이죠.
문맥을 볼 필요가 있는데,
로마서 5:2 하반절에서는
이렇게 알려 주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에 근거하여 기뻐합시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늘 희망을 갖고 있었죠.
그들의 희망은
단지 문제가 해결되거나,
세상 상태가 좋아지거나,
질병에서 치료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희망은
하늘의 희망이었죠.
골로새서 1:3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때에 ...
하느님께 항상 감사합니다.
하늘에 예비되어 있는
희망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함께
로마서 8:20, 21을 보겠습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의 큰 무리는
여호와께서 이 땅에 가져오실
낙원이라는 상을 받을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바울은 바로 그 희망을
여기 로마서 8:20, 21에서
지적한 것입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것에 복종하게 된 것은
자기의 뜻이 아니라
복종하게 하신 분에 의한 것입니다.
하지만 희망이 주어졌는데,
그 희망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자유롭게 되어
하느님의 자녀로서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2:12에서
앞에 놓인 “희망 가운데
기뻐하십시오”라고 했을 때
그 희망은
하늘 희망을 말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다른 양 역시
앞에 놓인 희망 가운데
기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희망은 어둡지만,
여러분의 희망은 밝습니다.
세상의 희망은 무너지고 있지만,
여러분의 희망은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
세상의 희망은
헛된 기대에 근거해 있지만,
여러분의 희망은
믿음에 근거해 있죠.
세상의 희망은
실망을 가져다주지만
여러분의 희망은
성공을 가져다줍니다.
신세계는 매우 가까웠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희망은
하늘 희망이든 땅의 희망이든
곧 실현되어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면
함께 디도서 2:13을 읽어 볼까요?
“그러면서 우리는
행복한 희망을 기다리며
위대한 하느님과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립니다.”
그에 더해,
로마서 8:24, 25에 따르면,
희망은
우리가 인내하게 도와줄 것입니다.
“보이는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희망하면,
우리는 인내하며
그것을 계속 간절히 기다립니다.”
희망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희망을
강하고 튼튼하게 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희망”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인 엘피스
기본적으로
좋은 것에 대한 기대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5:3, 4에서
환난, 인내, 승인받은 상태를
언급한 다음
마지막으로 희망을 언급합니다.
따라서 바울이 말한 희망은
우리가 처음에 좋은 소식을
배웠을 때 갖게 된 희망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이 희망은 그리스도인이
인내한 후에 얻게 되는
더욱 강한 희망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이
시련을 충실하게 인내할 때
하느님의 승인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런 확신은
처음에 가졌던 희망을
더 강하게 해 주죠.
우리도 바울처럼
박해를 겪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학교나 직장이나 가정에서
우리에게 거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부의 금지령 하에 있다면
더욱 그럴 수 있죠.
마태복음 5:11, 12을 보시죠.
예수께서
산상 수훈 가운데서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여러분을 모욕하고 박해하고
여러분에 대해 거짓으로
온갖 악한 말을 할 때에,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십시오.
하늘에서 여러분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전의 예언자들도
그와 같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제 다음 동영상을 보면서
한 증인 부부가
박해를 겪을 때에도 기쁨을 유지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유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른 아침에 무장한 러시아 특수 경찰들이
우리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제게 수갑을 채우고 집을 수색했죠.
그들은 저를 연행해 신문했고
이틀 뒤 법원은 저를 미결 구금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감옥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좀 두려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사관은 저를 협박하면서
죄를 자백하고 동료 형제 자매들의 이름을 대라고 했죠.
아내가 정말 보고 싶었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두 달 동안 그 어떤 영적 양식도, 성경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죠.
아내가 노트를 한 권 보내 줬는데
저는 거기다가 생각나는 성구들을 매일매일 적었습니다.
성구를 500개 정도 적을 수 있었어요.
그 후 성경을 한 권 구했는데
영적으로 굶주렸던 저는 4개월 만에 다 읽었죠.
감옥에 있는 동안 아내와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성경을 읽으면서 배운 흥미로운 점들을 알려 주곤 했습니다.
아내와 친구들이 보내 준 편지가 정말 큰 힘이 되었죠.
형제 자매들이 제게 아주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마치 제 옆 방에 있는 것 같았죠.
전 혼자가 아니었어요.
형제 자매들이 바로 제 옆에 있었죠.
국가가 저를 사람들로부터 떼어 놓을 수는 있어도
여호와로부터 떼어 놓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하루에도 여러 번 여호와께 기도했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자고 있을 때가
특히 기도하기 좋았습니다.
야간 조명만 비치는 밤 시간에
저는 여호와와 마음껏 이야기했죠.
감방에 아무도 없고 저 혼자만 있었던 적도 있었어요.
저는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활용했죠.
무릎을 꿇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하곤 했습니다.
저는 여호와께 청한 것들을 종이에 적어 보았고
그분이 들어주실 때마다 하나씩 지워 나갔죠.
여호와께서 바로 제 옆에 계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하루에도 여러 번 나지막한 목소리로 왕국 노래를 불렀죠.
하지만 혼자 있게 되면 목청껏 노래했어요.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증거했습니다.
다양한 주제로 대화했는데
몸에 문신을 하는 거나 “북방 왕”에 대해서도 얘기했죠.
‘내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343일 동안 감옥에 있었는데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았죠.
정말 잊지 못할 한 해였습니다.
영적으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 좋은 기회였죠.
여호와를 이렇게 가깝게 느꼈던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주권을 지지할 수 있어서 큰 영광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반대에 직면해 있다면
기쁨을 유지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여호와와 누리는 관계입니까?
형제 자매들입니까?
하늘 희망
또는 땅의 희망입니까?
아니면 이 모두입니까?
여호와와 형제 자매들의
사랑 가운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박해를 받고 있다면
같은 회중
형제 자매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우리 형제 자매들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천사들도 여러분이 충실을
지키는 걸 보고 자랑스러워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충실한 천사들을
크게 격려해 줄 수 있습니다.
여호와와, 예수와,
천사들과, 형제 자매들은
여러분이 박해를 받으면서도
나타내는 인내와 믿음 때문에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기뻐할 것입니다.
이제 봉사 위원회 보조자인
윌리엄 터너 형제가
이 심포지엄의
다음 연설을 할 것입니다.
주제는
“시련을 겪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다
—굶주림”입니다.
끼니를 거르거나
한동안 음식을 못 먹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많은 경우,
기분이 안 좋아지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사고력까지 저하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식을 구할
방법이 없다면 어떨까요?
또는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굶주려야 한다면요?
사실 사도 바울은
전파 활동을 하면서
실제로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 후서 11:27에서 그는
“굶주림과 목마름을 겪었고,
자주 음식을 먹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황무지나 뜨거운 사막을 여행할 때
그런 일을 겪었을 것입니다.
또 때때로 바울은
낯선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거나,
그런 환경에서 돈을
잘 벌 수 없었기 때문에
굶주렸을 수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큰 기근을 겪기도 했는데,
그 기근은
3년이 넘게 지속되었고
유대와 예루살렘 지역에
극심한 빈곤을 초래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환경에서
굶주림을 겪으면서도,
사도 바울은
매우 훌륭한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고린도 후서 6:10에서
바울은
자신과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슬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기뻐한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힘든 시기가
어느 정도 슬픔과 스트레스를
가져온다는 걸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굶주림을 겪으면서도
마음속에 있는
기쁨을 잃지 않았을까요?
그가 한 말을
빌립보서를 찾아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인데요,
11절에서 13절입니다.
11절.
“내가 궁핍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부족하게 지내는 법도 알고
풍부하게 지내는 법도 압니다.
배부르든 배고프든 풍부하든 궁핍하든,
모든 일에서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잘 지내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내게 능력을 주시는 분으로 인해
내게는 모든 일을 할 힘이 있습니다.”
여기 12절에서 바울이
배부르든 배고프든
모든 상황에서
잘 지내는 비결을 배웠다고 한 것에
유의하셨나요?
이러한 비결에는
여호와께서 필수품을
마련해 주실 것임을 신뢰하고
그분이 무엇을 주시든
만족하는 태도가 포함됩니다.
바울은 바로 그렇게 했죠.
그는 남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기술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봉사에 전념했기 때문에
물질적으론 가진 게 거의 없었죠.
하지만 그는
형제들의 도움에 감사했습니다.
형제들이 자신의 필요를 위해
무엇을 주든 감사히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다양한 상황을 통해
배운 게 있었습니다.
삶에서
여호와의 손길을 경험하면서,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여호와를 바라보는 것이
자신의 필요를 돌보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게 된 거죠.
13절을 기억하시나요?
여호와께서 바울을
붙들어 주시고 능력을 주셨습니다.
덕분에 바울은
다양한 역경 속에서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고,
내적 기쁨을 유지하고,
봉사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바울의 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우리도 다양한 이유로
굶주림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 불안이나
경제 위기로 인해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건들로 인해
많은 사람이 직업을 잃었습니다.
우리 형제들도 그렇죠.
그 때문에
개인적인 형편이 어려워져서
적은 돈으로
살아가야 할지 모릅니다.
박해 때문에
굶주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우리 형제들이
나치 수용소에 있을 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는데,
이것은 형제들의 충절을 꺾으려는
사탄의 악랄한 시도였습니다.
신권 활동을 확장하다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죠.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이주하는 일부 사람들은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사실 다양한 이유로
우리도 음식이 부족하거나
심지어 굶주리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죠.
그러다 보면 불안해지고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해결책은
여호와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평온함을 유지하면서
내일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가가 치솟았을 때
한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죠.
“매일 제가 드린 기도는 단지
우리 가족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여호와께서 무엇을 주시든
감사히 여겨야 합니다.
방금 말한 그 아버지는
한번은 음식을 사려고 줄을 섰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음식이
자신이 싫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이렇게 말했죠.
“그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먹는 것이었죠.
그래서 우린 그날 밤 그걸 먹었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주신 것에
감사했습니다.
어쩌면 우린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을 수 있는
상황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어서
그러지 못한다 해도
감사할 것입니까?
하느님께서 늘 우리의 필요를
돌봐 주신다는 사실은
정말 큰 위안이 됩니다.
물론 우리도
여호와께서 마련해 주신 것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이제 다음 동영상을 시청하면서,
한 자매가
굶주림을 겪을 때에도
기쁨을 유지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전 베네수엘라에 살고 있어요.
경제 위기가 있기 전엔
여기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어요.
그땐 가게에 가서
먹을 걸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었고
모든 게 평화로웠죠.
한 5년 전부터
상황이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본적인 식품조차 전혀 구할 수 없었죠.
가게에 가도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장로 형제 두 분이 거의 매일 찾아와서
저희에게 필요한 만큼 식품을 전달해 주셨죠.
저한테 가장 중요했던 건
아이들이라도 충분히 먹이는 거였어요.
항상 애들한테 음식을 더 줬죠.
그러면 막내아들은
“엄만 왜 이렇게 조금만 드세요?”
하고 물어요.
“엄만 이거면 됐어”
하고 대답하면 아들이 그러죠.
“아닌 것 같은데.”
그 정도만 먹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몸이 견디질 못했나 봐요.
어느 일요일에 집회를 보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았어요.
저도 모르게 기절을 했나 봐요.
다행히 딸이 옆에 있었는데,
제가 세 번이나 기절했다고 하더라고요.
믿기지가 않았죠.
형제들은 절 바로 병원에 데려갔어요.
심한 영양실조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죠.
형제들은 특별한 마련을 해 줬어요.
음식을 해서 갖다주고
제가 다 먹을 때까지 곁에 있어 줬죠.
예전에 비해 지금은 살이 좀 빠진 편이에요.
하지만 건강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장로 형제들은 항상 저를 잘 돌봐 주셨어요.
그래서 힘이 났고
계속 기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 정말 감사드려요!
여호와께서는 저를 꼭 붙들어 주세요.
저를 입히시고,
먹이시고,
좋은 친구들을 주시죠.
여호와는 그런 분이세요.
자매에게
무엇이 도움이 되었습니까?
먼저, 여호와와의 관계입니다.
자매는 여호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했습니다.
그다음으론
형제 관계입니다.
장로들이 자매를 세심하게
돌보는 모습이 감동적이죠?
매일 확인하고,
필요한 음식을 가져다주고,
다 먹을 때까지
곁에 있어 줬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형제 자매들의 도움을 받고,
우리의 희망을 굳게 잡는다면
굶주림을 겪게 되더라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빌립보서 4:12에서 한 말에
온전히 동의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에게
필수품을 주실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겁니다.
굶주림을 겪으면 당연히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염려하게 됩니다.
하지만 살펴본 것처럼
기뻐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 어떤 굶주림을 겪게 되든 말이죠.
어떻게요?
비결을 배우십시오.
그 비결은
우리를 기꺼이 돕고 싶어 하시는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온전히 의지하십시오.
그분이 우릴 위해
어떻게 행동하시는지 보십시오.
우리가 계속 충성과 기쁨을 나타낼 때
여호와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그분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제 출판 위원회 보조자인
로버트 루시오니 형제가
이 심포지엄의
다음 연설을 할 것입니다.
주제는
“시련을 겪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다
—헐벗음”입니다.
힘겨운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뻐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어떻게 사도 바울이
환난, 고난, 박해,
굶주림 가운데서도
기쁨을 유지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많은 분이 이런 시련을 겪었거나,
겪고 있기 때문에
바울의 그런 경험이
분명 격려가 됐을 겁니다.
그런데 자연재해나
심각한 사회 불안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면 어떨까요?
바울의 경험이
그런 상황에도 도움이 될까요?
심포지엄의 주제 성구인
로마서 8:35에서
바울은 심지어 헐벗음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 사실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럼 함께
고린도 후서 11:27을 보시죠.
자신이 겪은 시련을 이렇게 묘사하죠.
고린도 후서 11:27.
“수고하고 고생했으며,
여러 번 자지 못했고,
굶주림과 목마름을 겪었고,
자주 음식을 먹지 못했고,
추위와 헐벗음 [각주에 보시면
벌거벗음에] 시달렸습니다.”
바울이 헐벗게 된 것은
그가 게을렀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은 바울이 자신의 필요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알려 주죠.
사실 바울이 겪은
추위와 헐벗음은
그가 봉사를 하면서
경험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한번은
바울이 탄 배가
지중해에서 가장
강력한 바람에 떠밀려 다니다
파선된 적이 있었습니다.
배가 산산이 부서지자,
바울과 배에 있던 사람들은
나뭇조각과 배 파편에 의지해 살아남았고,
거의 헐벗은 상태로
육지에 도착했을지 모릅니다.
몰타섬 주민들이 불을 피워서
추위에 떠는 그들을
따뜻하게 해 준 걸 기억하시죠?
또 바울은
겨우 옷만 걸친 채
목숨을 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매질을 당하거나
돌로 맞기로 했는데,
그러면서 옷이 찢어졌을 것입니다.
또 사도행전 16:22을 보면
행정관들이
바울의 옷을 찢어 벗긴 다음,
매로 치라고 명령하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곤 감옥에 집어넣으라고 명령하죠.
이러한 기록들은
바울이
고린도 전서 4:11에서 한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고린도 전서 4:11.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계속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를 맞고,
집도 없이 떠돌아다닙니다.”
바울은 그러한 상황에 있었지만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권했습니까?
16절을 보시죠.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네, 자신을 본받아 시련에도
기뻐하라고 격려한 것입니다.
로마서 12:12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희망 가운데 기뻐하십시오.
거룩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어 주십시오.”
바울은 자신이 아주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돕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많은 형제 자매들이
재난으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몇 가지 일만 생각해 보시죠.
알바니아,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또 그 밖의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했고,
콩고, 스페인, 미국에서
큰 홍수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바하마와 필리핀에서는
허리케인과 태풍이 몰아쳤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에서는
큰 산불이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많습니다.
이러한 재난들로 인해,
많은 우리 형제 자매들이
겨우 입고 있던 옷만 걸치고
한밤중에 대피해야 했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런가 하면
자연재해 때문에
모든 걸 잃은 분들도 있죠.
정말 가슴을 아프게 하는
보고들입니다.
이러한 재해를 겪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형제 자매들은
계속 기뻐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이제 다음 동영상을 보면서,
한 증인 부부가
입을 옷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기쁨을 유지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유의해 보십시오.
저희는 뉴욕에 살고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정말 바쁘게 생활하죠.
저희도 그렇게 바쁘게 살았고요.
저희는 필요한 만큼 생활비를 벌면서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고 있었어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죠.
뉴욕에서 주로 신경이 쓰이는 건
안전 문제예요.
그래서 늘 주위를 잘 살피고 다니죠.
근데 허리케인은 생각도 못 했어요.
아무도 상상 못 한 일이었죠.
처음 재난 경보가 울린 날
바깥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어요.
저희 아파트 주차장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는데,
그걸 보고
이게 보통 일이 아니란 걸 직감했죠.
뭐 하나 챙길 새도 없이
몸만 간신히 대피했어요.
온통 쑥대밭이 됐고,
싹 다 잃었죠.
순식간에요.
물이 집 안까지 들어올 줄 생각도 못 했어요.
옷이며 살림살이며
다 못 쓰게 됐죠.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기분이었어요.
큰 충격이었죠.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이 정말 막막했어요.
근데 그 주에 순회 대회가 있었어요.
전 입고 갈 양복도 넥타이도 없었죠.
항상 있던 건데 없으니까,
그제서야 얼마나 귀한지 알겠더라고요.
그때 형제 자매들은 저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와줬어요.
금요일에 노크 소리가 들려서 나가 보니까,
옷 세 벌이 있는 거예요.
구두도요!
형제들이 사다 놓은 거였죠.
정말 고맙게도 형제들은
저흴 꼭 안아 주고
돈이 든 봉투도 줬어요.
여호와께서 저흴 입혀 주신 거나 다름없죠.
그런 재난을 겪었는데도
저흰 대회에 가서
영적 양식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물질적으로 모든 걸 잃었지만,
저흰 중단 없이 지금까지
계속 파이오니아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선 약속하셨죠.
왕국을 계속 첫째로 구하면
그분이 모든 걸 돌봐 주시겠다고요.
그 약속이 제게 큰 기쁨을 줘요.
살다 보면 다양한 시련을 겪게 될 수 있죠.
입을 옷이 없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 어떤 시련도
우리와 여호와 사이를
갈라놓거나 멀어지게 할 수 없습니다.
이 부부에게
무엇이 도움이 되었습니까?
하룻밤 사이에 모든 걸 잃었죠.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결심했죠?
브라이언의 말을 기억하시나요?
그 어떤 시련도,
설령 입을 옷조차
없는 상황이 생겨도,
우리와 여호와 사이를
갈라놓을 수는 없다고 했죠.
이 부부는
형제들의 도움에
큰 감동을 받았고
여호와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강해졌습니다.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우리가 시련을 겪더라도,
그 시련 때문에
우리의 소유물을 잃게 되거나
입을 옷까지
부족해진다 할지라도
우리는 기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형제 자매들의 도움을 받고,
우리의 희망을 굳게 잡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엔
어려움에 처한 형제 자매들을
즉시 나서서 도와준 분들이 많습니다.
그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재해가 더 자주,
더 크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형제 자매들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기꺼이 도움을 베푸는
여러분을 칭찬해 드립니다.
돕기 위해 재해 지역까지
직접 가신 분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허리케인 도리안이
바하마를 강타했을 때,
증인 조종사들이
7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을
피해 지역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또 여러분 중엔
현재 사는 지역에서
형제 자매들을 돕는 분들도 계시죠.
예를 들어, 콩고에서는
심각한 사회 불안으로
많은 형제들이
입고 있는 옷만 걸친 채
살던 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모든 재산과 생계 수단을 잃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네, 이웃 회중의 형제 자매들이
자신들도 어렵고 부족한 상황에서
돈과 음식과 옷과
심지어
지낼 곳까지 마련해 주었습니다.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에서는
회중들이 서로 음식을 나눠 먹고
식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또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전염병 가운데도
형제들이 어떻게
서로를 지원했는지 보십시오.
식품과 구호물자를 나누어 주고
감정적, 영적 지원을 베풀었습니다.
회중들과 가족들이
서로를 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자기희생적인 태도와
관대한 헌금은
전 세계의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축복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탄의 뺨을 한 대
때리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욥기 1:11의 내용을 기억하시죠?
사탄은
여호와와
그분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를
모욕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시련을 겪으면
여호와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라고 넌지시 말했죠.
욥기 1:11을 보겠습니다.
“이제 당신의 손을 뻗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한번 쳐 보십시오.
그가 틀림없이 당신의 면전에 대고
당신을 저주할 것입니다.”
네, 사탄은
우리가 소유물을 잃느니,
여호와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는
편을 택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남을 돕기보단
자기 자신의 필요를 더 중요하게
여길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완전히 틀렸습니다.
사탄은 오늘날 여호와의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분명히 화가
많이 나 있을 것입니다.
계속 사탄이
화가 나 있게 하십시오.
도움이 필요한 형제 자매들을
계속 지원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우리 자신도 행복하고
다른 형제 자매들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형제 자매 여러분,
계속해서 기쁨을 유지하겠다고
결심하도록 합시다.
세 가지를 꼭 기억하세요.
여호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형제 자매들의
사랑과 지원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소중한 희망을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헐벗음을 겪어도,
소유물을 모두 잃어도,
계속 충실히 여호와를 섬긴다면
그분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제 인사 위원회의 보조자인
랠프 월스 형제가
이 심포지엄의
다음 연설을 할 것입니다.
주제는
“시련을 겪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다
—위험”입니다.
이 심포지엄의 제목은
질문형이 아닙니다.
사실을 단정 짓는 표현이죠.
위험을 겪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다.
이 면에서 사도 바울이
남긴 본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위험을 겪으면서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다양한 위험에 직면했죠.
단 하나의 성구에서
바울은 자신이 겪은
8가지 위험을 언급하는데,
그중에는
“강도의 위험”이 있습니다.
바울은 심지어
에베소에 있을 때
경기장의 맹수와
맞서 싸워야 했을지 모릅니다.
이제 함께
고린도 후서 1장을 보시겠습니다.
8절에서 11절까지 보시죠.
8절부터 보시면,
“형제 여러분,
우리는 아시아 속주에서
우리가 겪은 환난에 대해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그는 이 편지를 쓸 때,
마케도니아 즉 유럽에 있었죠?
계속 보시죠.
“우리는 힘에 겨울 정도로
극심한 압력을 받아
생사마저 매우 불확실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일으키시는 하느님을
신뢰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위험한 죽음의 고비에서
우리를 구출하셨고
또 구출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앞으로도
우리를 구출해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그분에게 두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간구의 기도로
우리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많은 사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은혜를 두고
많은 사람이 우리 때문에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약 몇 개월 전에
바울은 고린도 회중에
첫 번째 편지를 썼습니다.
그때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에베소에 있었죠.
바울은 고린도 전서 15:32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에베소에서 야수들과 싸웠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이 말은 바울이 실제로 경기장에서
맹수와 맞섰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 희망은
그를 강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말했죠?
“그렇게 된 것은
우리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일으키시는 하느님을
신뢰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동료 형제들에게서
힘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말했죠?
“여러분도 간구의 기도로
우리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많은 사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은혜를 두고
많은 사람이 우리 때문에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역시
회중에서 따뜻한
형제 관계를 누리고 있습니다.
형제들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을 베풉니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선교 봉사를 하는 중에
극심한 압력을 받아
생사마저 불확실해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어디서 힘을 얻었습니까?
자신을 도와주러 온
동료 그리스도인들로부터
힘과 위안을 얻었습니다.
자연재해나
그 밖의 재난이 닥칠 때에
우리 형제들은 늘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서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또 영적인
지원을 베풉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경기장에서
맹수와 맞서야 할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바울처럼
어떤 위험을 겪든지 간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중 누구나 강도의 위험,
다시 말해 폭력을 당할
위험을 겪을 수 있습니다.
사회가 불안정할 땐
더 그렇죠.
성경은 이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사납고 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다음 동영상에서
한 가족이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위험을 겪었을 때
어떻게 기쁨을 유지했는지
유의해 보십시오.
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태어났어요.
지금은 페타레에서 사는데,
여긴 정말 무법천지죠.
몇 년 전에는 한 파이오니아 자매가
총에 맞아 죽는 일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끔찍한 일이
제 아들에게도 일어났죠.
집 근처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는데,
아들이 총에 잘못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아들 방엔
아직도 아들이 쓰던 침대와 물건들이 있고,
아들이 자주 입던 양복도 제자리에 걸려 있는데,
우리 아들만 없는 거예요.
가슴이 미어졌어요.
계속 눈물만 났고,
매일매일을 고통 속에 살았죠.
저희 소식을 들은 회중 형제들은
그 즉시 저흴 도와줬어요.
아들을 잃고
아무 경황이 없던 저희를 대신해
필요한 일들을 처리해 줬죠.
그 일이 있고 나서
봉사하러 나가는 게 너무 두려웠어요.
저나 저희 가족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요.
전 여호와께 기도했고,
여호와께선 제가 지혜로운 방법으로
봉사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가끔씩 혼자 있을 때 아들 생각이 많이 나요.
잘 이겨 내다가도
그날 있었던 일만 생각하면
다시 슬픔이 밀려오고
저도 모르게 막 눈물이 흐르죠.
그럴 땐 머릿속으로
여호와께서 주신 부활 희망을 생각하면서
다시 견딜힘을 얻습니다.
저는 나사로에 대한 기록을 정말 좋아하고
늘 기억하려고 해요.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는 확신을 표현했죠.
저도 확신해요.
저희 아들이 다시 살아날 거라고요.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렇게 해 주실 겁니다.
솔직히 그 일이 있고 나서
한동안 기쁨을 잃었었죠.
하지만 부활 희망 덕분에
슬픔에서 벗어나 기쁨을 되찾았어요.
여호와께서 이렇게 위로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절 부드럽게 토닥이면서 말이에요.
“힘을 내.
계속 충실히 인내하면
꼭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이 가족이 위험에도 기뻐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습니까?
기도,
부활에 대한 희망,
형제들의 지원
그리고 여호와의 영 덕분이었죠.
여러분이 위험에 직면해서도
기쁨을 유지하는 데
어떤 여호와의 마련이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여호와와 누리는 관계입니까?
형제 자매들입니까?
희망입니까?
그 밖의 것입니까?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인 이 마지막 날에
우리는
위험이 없어질 것이라는 희망 가운데
기뻐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습니다.
하박국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이 악한 세상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박국 1장을
함께 찾아 보시죠.
주변에서 일어나는 폭력,
다툼, 압제 때문에
그가 느꼈을
스트레스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묻죠.
“오 여호와여, ...
제가 폭력으로부터 구해 달라고
언제까지 청해야 합니까?
어찌하여
제가 그릇된 일을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압제를 용납하십니까?
어찌하여
제 앞에 파괴와 폭력이 있습니까?
어찌하여
다툼과 분쟁이 넘쳐 납니까?”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언제까지입니까?
하지만 그가
2:3에 기록한 내용을
함께 보시죠.
“이 환상은 정해진 때에 대한 것이며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 환상은 거짓말이 아니니
늦게 이루어지더라도 계속 기대하여라!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박국처럼 우리도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분이 곧 폭력을 끝내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박국은 여호와께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했고,
아버지이자 친구인
그분을 신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걱정만 하거나
자기 이해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염려에 대해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 훌륭한 본이 되죠?
3:18을 보면
하박국이 어떻게
결심했는지 잘 나옵니다.
18절.
“저는 여호와 안에서
환희에 넘치고
저의 구원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겠습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분인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기도로 염려를 털어놓음으로
그분께 신뢰를 나타내기를 원하시죠.
여호와께서는 염려를 표현한
하박국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말이 기록되게 하셔서
때때로 염려를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일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도움을 청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여호와의 응답을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를 따뜻이 안아 주시듯
친절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 무엇이 우리를 괴롭히든
그분은 자신의 생각을 알려 주실 겁니다.
진심 어린 기도는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위험에서
우리를 구출하기를 열망하신다는 사실은
큰 기쁨을 줍니다.
이제 교습 위원회의 보조자인
데이비드 셰이퍼 형제가
이 심포지엄의
마지막 연설을 할 것입니다.
주제는
“시련을 겪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다
— 칼”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원 59년에서 61년경
로마에서 처음으로 투옥되었을 때,
항상 군인의 감시를 받긴 했지만
자신의 셋집에 머무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 2년 동안
바울은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증거했고,
영감받은 편지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그리고 히브리서를 썼습니다.
그 후에 바울은
석방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선교 봉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에베소에 있던 디모데와
크레타에 있던 디도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로마 황제 네로는
로마의 대화재에 대한 책임을
그리스도인에게 돌렸습니다.
또다시 바울은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때는 기원 65년이었고,
바울이 수십 년간
충실히 봉사한 뒤였습니다.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 답을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두 번째 편지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수감 중에 쓴 편지이죠.
함께 디모데 후서 4장을
펴 보시겠습니다.
바울을 체포한 사람들은
칼을 차고 있었을까요?
그랬을 겁니다.
혹시 바울은 그 칼을 보고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헤롯 아그리파 1세의 칼에 의해
처형당한 것을 떠올렸을까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디모데 후서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바울이 자신의 처형이
임박했음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 수 있는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처형을 앞두고
세 가지 점이
바울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함께 디모데 후서 4:6-8을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이미 음료 제물처럼 부어지고 있으며,
놓일 때가 임박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의 죽음이 가까웠고
결국 그리스도의 하늘 왕국에서
부활될 것임을 언급한 것이었죠.
계속 7절을 보시죠.
“나는 훌륭한 싸움을 싸웠고
경주를 끝까지 달렸으며.”
“끝까지”
네, 바울은
자신이 달리고 있는 경주에서
영광스러운 끝에
이르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계속 보시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강한 희망을 볼 수 있죠?
또 계속 보시면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상으로 주실 것입니다.”
이 표현에서
바울이 여호와와 맺은
튼튼한 관계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아들이 약속된 상을 줄 거라는
흔들림 없는 확신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또 바울은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만이 아니라,
그분이 나타나시기를 고대해 온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사랑했고
그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죽음의 위협에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형제들과 여호와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희망이죠.
바울은 죽길 원치 않았죠.
살아서
형제 자매들과 함께
계속 여호와 하느님을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용기 있게
죽음을 맞이했고
자신을 위해 준비된
상을 생각하며 기뻐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죽음의 위협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주제 성구인
로마서 8:35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겠습니까?
환난이나 고난이나
박해나 굶주림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겠습니까?”
그 답이 38, 39절에 나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정부들도
현재 있는 것도 오게 될 것도
권세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네, 죽음도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일시적일 뿐인 죽음은
자신의 종들을 향한
여호와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사랑하실까요?
사라, 리브가, 욥, 모세, 다니엘은요?
감옥이나 수용소에서
믿음 때문에 사망한
모든 형제 자매들은 어떨까요?
지금도 그들을 사랑하실까요?
물론입니다.
또 최근에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형제 자매들이 사망했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들도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사망한 우리의 할머니, 아버지,
여동생을 사랑하시고 늘 기억하십니다.
그들을 다시 부르실 겁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바울처럼 칼과 같은
죽음의 위협에 직면할 때
우리 모두를 붙들어 줄 것입니다.
이제 다음 동영상을 보면서
바티 마이클 둑베라는 형제가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서도
기쁨을 유지하는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온통 혼란에 휩싸이고,
주변의 모든 게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때가 있죠.
그럴 때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여호와밖에 없습니다.
전 바티 마이클 둑베고,
1980년에 라이베리아 몬로비아에서 태어났어요.
전쟁이 터지기 전까진
정말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훌륭한 부모님과 함께
좋은 집에 살면서,
좋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죠.
아홉 살 때 모든 게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반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그걸 듣고 사람들은 큰 혼란에 빠졌죠.
가게들이 줄줄이 문을 닫기 시작했고,
수도 전기할 것 없이
모든 공급이 끊어졌습니다.
그 후로 여러 해 동안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다가
1996년엔 사태가 정말 심각해졌어요.
몬로비아 안에서
반군이 전쟁을 일으킨 거죠.
여기저기서 약탈이 일어났고,
거리에선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반군은 자기들 편에 서서
싸우지 않는 사람들을
고문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선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죠.
그렇게 두려움이 커질 때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여호와께 기도하는 거예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 달라고
그분의 인도를 구체적으로 구하는 거죠.
전쟁이 격렬해지면서
저희가 사는 곳도 위험해졌습니다.
결국 저희 가족은 집을 떠나
지부 사무실로 피신하게 됐어요.
형제들은 정말 친절했고
저희를 잘 돌봐 줬습니다.
영적인 활동도
정기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줬죠.
제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해요.
제게 큰 힘이 됐던 게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여호와와의 관계예요.
그것만이 우리를 붙들어 줄 수 있죠.
그리고 또 하나는
형제 자매들이 저희에게 베풀어 준 지원입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형제 자매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느끼게 되죠.
저는 지금 베델 오디오/비디오 봉사부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형제 자매들을
정말 사랑해요.
이렇게 살아서
매일 여호와를 섬길 수 있어서
그분께 정말 감사합니다.
이 동영상은
이 세상의 삶이 얼마나
불확실한지 잘 보여주죠.
둑베 형제가 죽음의 위협에도
기쁨을 유지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습니까?
여호와와 누리는
좋은 관계였습니다.
또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영적인 활동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강한 희망을 유지했습니다.
많은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현대의 일부 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중에도 믿음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질병이나 사고 또는
이 마지막 날에 일어나는
다른 끔찍한 일들 때문에도
우리는 죽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많은 동료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신세계가
오기 전에 죽을 수 있습니다.
또는 큰 환난을 살아서
통과하게 될 수도 있죠.
어느 경우이든
우리는 끝까지 하느님께 계속
충실을 유지하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이 죽기 전에
신세계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혹시라도
죽음에 직면하게 될 때
충성을 유지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을 겁니다.
또는 자신의 생애 내에는
큰 환난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환난이 왔을 때
대비가 돼 있지 않을 겁니다.
유일하게
두 가지 경우를
다 대비하는 방법은
영적으로 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깨어 있는 것이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살피십시오.
여러분의 주가 어느 날에 올지
여러분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로마서 8:35에 표현되어 있는
사도 바울의 강한 확신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았습니다.
이 심포지엄에서
무엇을 배우셨나요?
우리는
로마서 8:35-39을 통해
그 어떤 시련도
여호와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못하게
막을 수 없다는 걸 배웠습니다.
시련을 겪을 때도
여호와께서 우리를 승인하시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면
기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환난, 고난,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험, 칼
그 어떤 시련을
겪는다 해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매우 사랑하시는
여호와와 계속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개인 연구와 기도를 통해
여호와에 대한 신뢰심을 키우십시오.
하느님의 사랑을
계속 확신하십시오.
형제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서로 더 가까워지십시오.
하느님이 주신 소중한 희망과
미래에 누릴 참생명을 묵상하십시오.
마지막으로
골로새서 1:11에 들어 있는
영감받은 기도를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계속한다면,
바울처럼 그 어떤 시련에도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골로새서 1:11에는
다음과 같은
격려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영광스러운
위력에 따라 모든 능력으로 강해져서.”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위력에 따라
우리는 얼마나 강해질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말씀은
그분이 지금까지 이루신 일과,
앞으로 이루실 일을 알려 줍니다.
그분은 가장 강력한 힘인
성령을 사용하십니다.
그 성령을 왜 우리에게 주십니까?
단지 인내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단지 온전히
인내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단지 참을성으로 온전히
인내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성구 표현에 따르면,
“참을성과 기쁨으로
온전히 인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힘든 시련이라도,
그 시련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든
인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결코 없어지지 않는 사랑이
우리가 항상 그리고 영원히
기뻐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힘을 주는 연설들에
감사합니다.
또한 우리는
기쁨을 잃지 않는 데
필요한 것을 베푸시는
여호와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일어나서
노래 9번을 부르시겠습니다.
“여호와가 우리의 왕이시다!”
노래 9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