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W subtitle extractor

제임스 맨츠: “위급한 때”를 인내하면서 서로 위로하십시오

Video Other languages Share text Share link Show times

오늘의 주제 성구는 고린도 후서 1장 3절과 4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아버지,
부드러운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느님은 찬양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온갖 시련을 겪을 때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는 위로로,
온갖 시련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태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 모두에게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어렸을 때 우리가 배가 고프거나
어딘가 불편해서 울면
부모님이 달래 주고 안아 주셨죠.
그러면 가장 최근에 위로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때는 언제였나요?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에게는 위로가 필요하죠.
다들 공감하실 겁니다.
시편 90:10에서는 불완전한 인간의 삶에 대해
이렇게 시적으로 묘사합니다.
90:10.
“우리의 수명은 70년,
특별히 강건하면 80년이지만
괴로움과 슬픔만 가득하고 신속히 지나가니
우리가 날아가 버립니다.”
우리에게 괴로움이나 슬픔,
고통을 주는 문제는 아주 다양합니다.
그중에는 불완전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는데,
예를 들어
질병과
노령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이 있죠.
또 모두가 겪지는 않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혼, 경제 문제,
소요 사태와 전쟁, 자연재해가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거나,
학대나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죠.
또한 여호와를 섬기면서
겪을 수 있는 문제 때문에도
우리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여호와를 섬기지 않는 가족과 함께 살거나,
학교나 직장에서 조롱을 받거나,
박해나 투옥을 당하거나,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여호와를 떠날 때
어려움을 겪습니다.
잘못을 한 사람이 회중으로
돌아오려고 할 때에도 위로가 필요하죠.
지금까지 살펴본 문제 가운데
우리가 현재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든
우리 모두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사실 성경에서도 그 점을 언급하는데요.
베드로 전서 5:9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이 세상에 있는 연합된 모든 형제들도
같은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6절과 7절에서는 우리가 누구에게서
위로를 얻을 수 있는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강력한 손 아래
자기를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이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염려를 모두 그분에게 내맡기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 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모세는 언제나 여호와의 도움과
위로를 확신했습니다.
자신이 그 어떤 문제를 겪든지 말이죠.
모세는 확신에 차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신명기 33:27.
“옛 시대부터 하느님은 도피처이시며
그 영원한 팔로 당신을 떠받쳐 주십니다.”
만약 우리가 넘어져서 못 일어나고 있다면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팔로 우리를 떠받쳐
부드럽게 일으켜 세워서
다시 설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시편에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잘 돌봐 주시는지 자주 언급합니다.
예를 들어 한 시편 필자는
여호와에 대한 감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시편 94:19.
“염려에 휩싸였을 때에
당신이 나를 위로하고 달래 주셨습니다.”
또 로마서 15:4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 기록된 모든 것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내와 성경의 위로를 통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낙담한 원인이 무엇이든
위로가 되는 성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생활을 위한 성경 구절들」 책의
“위로”라는 항목을 보면,
우리를 낙담하게 하는 원인과 여호와의 사랑을
확신하게 해 주는 성구들이 나와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고난을 겪은 성경 인물들의 예와
그들을 여호와께서
어떻게 도우셨는지도 나와 있죠.
여호와께 위로받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분께 요청하는 것입니다.
시편 145편에서 다윗왕은
여호와가 얼마나 놀랍게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지 이렇게 썼습니다.
시편 145:18, 19입니다.
“여호와는 자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신을 참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십니다.
하느님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시니,
도와 달라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을 구출하십니다.”
마치 자녀의 울음소리를 듣고
얼른 자녀에게 달려가는 부모처럼
여호와께서도 우리의 도와 달라는 간청을 듣고
필요한 도움을 주십니다.
예를 들어 사무엘상 1, 2장의 기록을 보면
이스라엘 여자인 한나는 매우 낙담해 있었습니다.
그는 자녀가 없어서 “몹시 비통해”하며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장막에 갔을 때 여호와께
“기도하며 걷잡을 수 없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겸손한 한나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한나는 “가서 먹었으며
얼굴에 더는 수심이 없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기도로 그분께
마음을 쏟아 놓을 때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성경에는 위로에 관한 말씀이 많습니다.
그중에는 앞서 낭독했던
고린도 후서 1:3, 4이 있는데요.
이 연설의 주제 성구라고 말씀드렸죠.
이 성구를 다시 보면서 우리 자신이
힘겨운 시련을 겪는 가운데에서도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데 이 말씀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 후서 1:3, 4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아버지,
부드러운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느님은 찬양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온갖 시련을 겪을 때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는 위로로,
온갖 시련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여기서 “부드러운 자비”라는 표현은
다른 사람의 고난을 보고
슬퍼하는 감정과 관련이 있는데요.
시련을 겪고 있는 충실한 종들에 대한
하느님의 부드러운 감정을 잘 묘사해 줍니다.
바울은 또 이렇게 말했는데요.
여호와는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모든 위로는 여호와에게서 오는 거죠.
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한 가지 방법을 알려 주는데요.
바로 형제자매들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성구를 다시 읽어 보죠.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온갖 시련을 겪을 때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는 위로로,
온갖 시련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라고 했죠.
성구에서 알려 주는 것처럼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과 베푸는 것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여호와에게서 위로를 받으면
그분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우리도
성령에 의해 다른 사람을 위로하려는
마음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중에 위로를 주는 사람,
받는 사람이 따로 있나요?
누구는 주기만 하고 누구는 받기만 할까요?
아니죠.
우리 모두는 위로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을
위로할 의무도 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보시죠.
로마에서 처음 감금되었을 때
바울은 여러 형제들이 자신에게
“큰 위로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고 썼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4장에서
그중 몇 사람을 언급했는데요.
아리스다르고, 두기고, 마가입니다.
이 세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 이따가 더 알아볼 것입니다.
바울은 형제들이 자신을
직접 찾아와서 위로해 주고
꼭 필요한 도움을 베풀어 준 것에 대해
고마워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받기만 하지 않았죠.
그는 감금되어 있는 동안
자신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회중들을 격려하는 편지도 썼습니다.
바울의 본을 따른
한 자매의 경험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사는 클로딘 자매는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아무도 병문안을 올 수가 없었죠.
그렇지만 클로딘 자매는
낙담에만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게
힘을 달라고 하느님께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클로딘은 예전에 성서 연구를 했던
여자에게 연락했죠.
그 여자는 연구를 다시 시작했고
화상으로 집회에도 참석했습니다.
클로딘은 그 여자의 여동생과도
성서를 연구하게 되었는데,
성경을 배우고 싶어 하는
네 사람을 더 소개받았습니다.
클로딘은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성서 연구를
총 16건이나 사회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낙담해서 위로가 필요한데도
도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전달했지만,
그들은 ‘낙담해서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서야 그의 말을 들었죠.
또 “나의 즐거움”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나오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오미는 기근 때문에 외국에서 살던 중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는 슬픈 일을 겪었습니다.
나오미가 이스라엘로 돌아오자
베들레헴의 여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나오미인가?”
여호와께서 고난을 겪게 하셨다고
생각한 나오미는
슬퍼하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십시오.
전능자께서 내 삶을 몹시 비통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하느님의 백성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들였고,
비통했던 그의 심정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시련을 겪고 있다면
사람들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향을 물리쳐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여호와께서는 형제자매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우리를 위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려고 노력한다면
형제자매들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생길 것입니다.
시련을 겪을 때 여호와의 위로를 경험해 보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는지
배우게 되는데요.
위로를 베푸는 첫 번째 단계는 이것입니다.
바로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잘 살피는 것이죠.
많은 경우에는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고를 당했거나,
직장을 잃었거나,
친구나 가족과 사별한 경우가 있겠죠.
그런데 쉽게 알아보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 평소와 달라 보이거나
표정이 좀 안 좋아 보인다면
무슨 일이 있다는 뜻일 수 있죠.
그럴 때 캐묻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무슨 일인지 부드럽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마음을 털어놓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기다려 줘야 할지 모르죠.
위로를 베푸는 두 번째 단계는
돕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낄 수 있는데요.
오랫동안 함께한 아내를 잃은 한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슬픔이 사라지진 않겠죠.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죠.”
그런 사람을 도울 때
잠언 3:27의 말씀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네게 도울 능력이 있거든,
네가 선을 베풀어야 할 자들에게
선을 베풀기를 주저하지 마라.”
뭐라고 해야 할지,
뭘 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낀다면
성경에서 “위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 단어는 문자적으로
“곁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이게 바로 세 번째 단계입니다.
당신이 곁에 있다는 걸 알려 주는 것이죠.
꼭 특별한 말을 해 줘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관심을 보이고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줄 수 있죠.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해 보인다면
이야기를 잘 들어 주세요.
여호와께서 그가 겪는 일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지 알려 주는
성구를 보여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건 뭘 해 주는가가 아니라
그들의 어려움을 알아주고
우리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계 본부에서 일하는 한 자매는
팬데믹 기간에 부모님을 모두 잃었습니다.
하루는 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돌봐 드리고
집에 와 보니 뭔가 놓여 있었는데
커다란 과일 바구니였죠.
베델 동료들이 보낸 선물이었습니다.
자매는 말했죠.
“제가 감동을 받은 건 과일을 선물로 받아서도
아니고 바구니가 예뻐서도 아니었어요.
저를 사랑하고 생각해 주는
형제자매들의 마음 때문이었죠.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그 덕분에 잘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2011년에 강력한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동부를 강타했을 때
전 세계의 형제자매들이 즉시 도움을 주었습니다.
2년 반 뒤에 저와 제 아내는 피해 지역의
회중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중 한 회중에서 네팔 형제자매들이 보낸
위로의 메시지를 보았죠.
또 다른 회중에서 형제들은 필리핀 형제자매들이
보내 준 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형제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마음은 느껴졌어요.”
일본의 형제자매들에게
그 짧은 메시지가 큰 위로가 된 것입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슈퍼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휩쓸고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일본 형제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필리핀
형제자매들을 위로할 차례예요.”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
점점 더 깊어 가고 있기 때문에
위로가 필요한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부드러운 자비의 아버지”이시고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이
정말 감사하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선 관대하게 주셨죠.
기도라는 선물,
성경에 담긴 수많은 위로의 말,
사랑 많은 수많은 형제자매들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련 덕분에 큰 위로를 받고 있죠.
따라서 우리 역시 힘든 일들을 인내해 나가면서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살피고,
실제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생각해 보고,
그들의 곁에서 따뜻이 위로해 주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