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W subtitle extractor

JW 방송—2026년 3월

Video Other languages Share text Share link Show times

JW 방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살다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때가 종종 생깁니다.
이번 달 방송에서는 그럴 때 어떻게
감정을 잘 제어할 수 있는지 알아볼 것입니다.
또 요나서를 살펴보면서
충성스러운 사랑에 관해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계속 연예인으로 살아갈지
여호와를 섬기는 삶을 살지 선택해야 했던
한 자매의 이야기도 들어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수감된 일부 형제들이 어떻게
강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시죠.
그럼 이번 달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근심하지 마십시오.”
얼마 안 있어 제자들을 떠날 거라는
말씀을 하신 직후에 예수께서 남기신 말이죠.
충격을 받아서 불안해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께선 요한복음 14:1의
이러한 위로가 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근심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 믿음을 나타내고
나에게도 믿음을 나타내십시오.”
성경에서는 악한 사람들을 가리켜
마치 요동치는 바다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느낄 때가 많이 있죠.
나쁜 소식이 마치 파도처럼
계속해서 밀려오는 겁니다.
세상 사건들과 개인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다 보면
감정적 에너지를 다 잃게 되죠.
그래서 하루를 마칠 때쯤엔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오늘날 우리가 감정 에너지를 지혜롭게
사용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까요?
이제 그 성구에 나오는 두 문장을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마음에 근심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죠.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도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심으로
사도들이 그런 상황에서
근심할 것인지 근심하지 않을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생각에 깊은 영향을 받죠.
어떤 사람이나 일 때문에 특정한 기억이 떠오르면
그와 관련된 감정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근심하지 말라는 말은
먼저 우리의 생각을 제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슬픈 일을 생각하면 슬퍼지고
위험한 일에 관해 생각하면 불안해지는 거죠.
우리의 마음은 방이 아주 많이 있는
큰 집에 비할 수 있습니다.
각 방들은 우리가 하는 생각이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죠.
어떤 생각이나 경험의 방에 들어가면
그와 관련된 온갖 감정도 함께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도들은 ‘예수께서 우리를
떠나실 거야’라는 생각의 방에 들어간 채
슬픔과 불안함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이 감정을
제어할 수 있다고 안심시켜 주신 거죠.
그러니까 그들은 감정 에너지를
슬퍼하는 데만 쓸 수도 있었고,
여호와 하느님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데 쓸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감정에 영향을 받죠.
때로는 사도들처럼 슬픔으로 가득 찬 어두운 방에
떠밀려 들어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잠깐이면 몰라도 그 방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또 마음에 근심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한정된
감정 에너지를 지혜롭게 사용해야 하는데요.
이사야 55:2에선 이렇게 알려 줍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아닌 것을 위해
돈을 지불하며,
어찌하여 배부르게 하지도 못하는 것을 위해
네가 번 것을 쓰느냐?”
가짜 빵을 돈을 주고 사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죠.
하루 식비로 만 원을 받았는데
아침을 먹는 데만 8000원을 써 버린다면
점심이나 저녁 먹을 돈이 부족하겠죠.
마찬가지로 하루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감정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에 쓸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감정 에너지를 어디에 쓰고 계신가요?
혹시 여러분의 감정 에너지를
불필요한 곳에 쓰고 있진 않나요?
예를 들어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누가 위험하게 끼어듭니다.
또 억울한 일이나 실망스러운 일을 겪을 수도 있죠.
이런 일을 겪으면 화가 나서
우리 감정을 너무 많이 소모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감정 에너지를
지혜롭게 쓰는 것일까요?
불필요한 일에 우리의 한정된 감정 에너지를
지나치게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요?
현금이 가득 든 지갑을 아무한테나 주면서
원하는 대로 돈을 가져가라고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라면 몰라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절대 그렇게 안 할 겁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는 감정 에너지를
사랑하는 사람과 중요한 일을 위해 아껴 두어야 합니다.
우리 가족, 형제자매들,
특히 여호와와 그분께 드리는
숭배를 위해 사용해야 하죠.
소셜 미디어, 정치나 사회문제, 영화.
이런 것들은 기회만 있으면
우리 감정을 소모시키려고 합니다.
그것들이 우리의 감정 에너지를
원하는 대로 다 가져가게 내버려 둔다면
하루를 마칠 때쯤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쓸
감정 에너지가 얼마 남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일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감정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바로 행복해지는 비결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해지려고
자신을 위해 돈을 쓰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합니다.
하지만 자기만 생각해서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죠.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감정 에너지를
지혜롭게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시죠.
행복이란 사랑을 나타낼 때 얻게 되는 부산물입니다.
불을 피울 때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은 무엇입니까?
온기와 빛이죠.
불을 피우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온기와 빛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죠.
일단 불을 피워야 그 결과로
온기와 빛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감정 에너지를
사랑을 나타내는 데 사용할 때
자연스럽게 행복이라는 감정이 따라옵니다.
네, “마음에 근심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생각을 잘 제어하면 감정을 긍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 우리는 감정 에너지를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족, 형제자매들, 특히 여호와와
그분께 드리는 숭배를 위해 써야 하죠.
이제 요한복음 14:1의 후반부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하느님께 믿음을 나타내고
나에게도 믿음을 나타내십시오.”
여기서 예수께서는
그냥 믿음을 나타내라고 하지 않으시고
하느님과 그분께 믿음을 나타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라는 특성을 여호와와 예수에게
연결시켜 주신 거죠.
따라서 불안한 마음이 들 때
여호와와 예수께서 우리 곁에 계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분은 우리 옆방에 계신 것과 같습니다.
우린 언제든지 기도와 묵상을 통해
그 방으로 달려갈 수 있죠.
여호와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우리의 감정을 안정시켜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에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죠.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상황을
잘 아신다는 걸 믿으시나요?
그 믿음은 우리가 염려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 맡겨야 하는 문제를 우리가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면 염려만 더 하게 될 뿐입니다.
우리가 가난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노화는요?
전쟁, 범죄, 소요 사태는 어떻습니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합니다.
오직 여호와와 예수께서
왕국을 통해서만 해결하실 수 있죠.
여호와와 예수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 것은
우리가 나쁜 소식을 듣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염려하지 않게 해 주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저는 에리트레아와 러시아에서 형제들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지나치게 염려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신 적이 있나요?
걱정이 많이 되시겠죠.
어떻게 예수의 말씀대로 근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전 이렇게 하는 게 도움이 됐습니다.
회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고,
지부와 세계 본부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고,
나도 기도했다면 여호와께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죠.
“여호와여,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이제는 당신께 맡깁니다.”
시편 112:7에서는 의로운 사람이 나쁜 소식에
대처하는 법을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는 나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그의 마음은 여호와를 신뢰하여 굳건하다네.”
어떻게 하는 게 도움이 됩니까?
여호와께서 성령을 사용해 도와주실 것을
신뢰하는 겁니다.
또 감정적으로 지쳤을 때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정상적인 것을 초월하는 능력”을
주실 거라고 하신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나에게 그렇게 해 주실 거라는 점을 믿어야 합니다.
기도로 감정을 털어놓으면 그분은 들으시고
그 감정적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게 도와주시죠.
꼭 문제를 없애 주시는 건 아닐지 모르지만
잘 헤쳐 나갈 수 있게 분명히 도와주실 겁니다.
로마서 12:11에서는 우리에게
“영으로 타오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면 돌 하나가 떠오르는데요.
이 돌은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여기에 자외선을 비추면
마치 타오르듯이 빛이 나죠.
빛이 없을 땐 그냥 흔한 돌멩이처럼 보이지만
빛을 비추면 이렇게 빛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느님의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우리도 이렇게 빛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지친 우리에게
성령을 사용해 매일 새 힘을 주십니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매일매일
빛나게 해 주시는 거죠.
또 이런 점도 생각해 보시죠.
어린 아이가 밤에 무서우면 어디로 달려갑니까?
엄마, 아빠 방이죠.
자기를 달래 줄 걸 아니까요.
우리도 기도로 여호와의 방에 달려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성령, 성경,
형제자매들을 통해 우리를 위로해 주시죠.
우리에게 빛을 비춰 주시고
“정상적인 것을 초월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따라서 마음에 근심이 되는 일이 있을 때
우리의 집에 방이 하나만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십시오.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여호와께서 우리의 손을 잡고 다른 방으로 데려가 주시고
곁에 있어 주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슬픔의 방에서 부활이라는 방으로,
아픔의 방에서 완전한 건강이라는 방으로,
죄책감의 방에서 용서의 방으로
데려가 주시는 거죠.
예수께서 부활되신 걸 본
사도들의 느낌도 완전히 달라졌을 겁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떠나실 거야’라는
생각의 방에 갇혀 있던 그들이
‘예수께서 돌아오셨어!’라는
생각의 방으로 들어왔으니까요.
여호와와 예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요한복음 14:1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에서 어떤 점을 배웠는지 정리해 보시죠.
“여러분은 마음에 근심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통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감정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정된 감정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우리 가족에게, 형제자매들에게, 또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지혜롭게 써야 한다는 점을 배웠죠.
또 예수께선 “하느님께 믿음을 나타내고
나에게도 믿음을 나타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와 예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임을 믿으십시오.
감정적 어려움을 포함해서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모든 문제를 말입니다.
그 전까지는 여호와께서
우리가 지금 겪는 어려운 문제들에 대처할
“정상적인 것을 초월하는 능력”을
주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네, 앞으로 여러분이 감정적으로 지치고 힘들 때
요한복음 14:1에 나오는
이러한 예수의 말씀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근심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 믿음을 나타내고
나에게도 믿음을 나타내십시오.”
요나는 여호와를 섬겼지만
그분을 신뢰하는 법을 더 배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배웠을 때 요나는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제어할 수 있게 됐죠.
요나에게서 무엇을 더 배울 수 있을지 이번 달
「영적 보물을 찾아보세요」를 시청해 보시죠.
아빠, 요나 드라마 다 봤어요.
진짜 재미있던데요.
그래, 재미있었지?
그런데 성경 기록을 함께 읽어 보면 더 좋아.
그러면서 이런 질문을 해 보는 거지.
‘이 기록은 여호와에 대해 무엇을 알려 줄까?’
잠깐만요, 좀 적어 놓을게요.
뭐 좀 생각나는 거 있어?
음, 여호와의 용서와 참을성이요?
맞아. 그분은 요나가 발전할 때까지
기다려 주셨어.
3:1을 보면 요나에게
두 번째로 기회를 주셨고,
실수를 저질렀을 때도 보호해 주셨지.
또 안 좋은 태도를 나타냈을 때
부드럽게 바로잡아 주셨어.
요나를 끝까지 포기 안 하신 게 대단해요.
그렇지. 그걸 “충성스러운 사랑”이라고도 불러.
혹시 무슨 뜻인지 기억나?
대충요.
음, 이렇게 잘 모르는 말이 나오면
성경 “용어 설명”에서 의미를 찾아봐.
라이브러리 앱에서 “충성스러운 사랑”이라고
검색하면 옆에 “용어 설명”이 보이지?
어, 네.
뭐라고 써 있어?
충성스러운 사랑은 “헌신적인 마음, 충절, 충성,
깊은 애착에서 우러나온 사랑을
가리킨다” 그랬네요.
요나 드라마에 나온 여호와의 사랑이
이런 사랑이었던 것 같아요.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잖아요.
그런데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3일 동안
갇혀 있는 경험도 하고,
니네베 사람들이 뉘우치는 걸 보고 나서도
계속 자기 생각만 했어요.
여호와께서 니네베 사람들을 용서해 주셨을 땐
자기가 가짜 예언자처럼 보일까 봐 화를 냈어요.
그것보단 차라리 니네베 사람들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나 봐요.
음, 그건 좋은 태도가 아니었지.
그럼 여호와께선 어떻게 하셨지?
저라면 못 참았을 텐데.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요나가
꼭 나쁜 사람이었던 건 아니야.
그래서 여호와께선 호리병박을 사용해서
요나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셨어.
4:6에선 뭐라고 했지?
여호와께선 친절하게 호리병박이 자라게 하셔서
요나한테 그늘을 만들어 주셨어요.
요나의 태도가 그렇게 안 좋았는데도요.
성구에선 요나가 매우 기뻐했다고 했는데,
여호와의 충성스러운 사랑 때문에
요나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한 거야.
이제 요나는 여호와께 다음 교훈을 배울
준비를 갖추게 된 거지.
아, 그러네요.
여호와께선 벌레 한 마리를 보내셔서
호리병박이 죽게 하셨어.
그늘을 없애 버리신 거지.
요나의 반응이 어땠지?
화가 나서 난리를 쳤죠.
바로 그때 여호와께서 요나에게
중요한 교훈을 알려 주셨어.
10절, 11절이죠?
맞아. 여호와께선 요나에게
‘네가 호리병박을 아꼈다면
내가 니네베 사람들을 아끼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냐’고 물으셨어.
그리고 요나서는 그렇게 끝나.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았지.
요나는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보시는지
분명히 이해하게 된 거야.
여호와께서 요나와 계속 함께하시면서
충성스러운 사랑을 나타내셨네요.
응. 그리고 이런 점도 생각해 보자.
여호와의 사랑 덕분에 요나 말고
또 누가 유익을 얻었을까?
「훌륭한 믿음의 본」 책을 보면
상상력을 발휘해서
성서 인물들이 느꼈던 걸 느끼고,
그들이 본 걸 보려고 노력해 보라는 제안이 나와.
또 내가 그 인물이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 볼 수도 있어.
상상해 봐. 선원들이 거짓 신에게 간청하는 걸
보면서 요나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또 요나가 이 상황이 자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걸 인정했는데도
선원들은 요나를 배 밖으로
던져 버리려고 하지 않았지.
맞아요. 요나를 살리려고 최선을 다했죠.
여호와께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필요하고,
그들에게도 좋은 특성이 있다는 걸
보여 주신 것 같아요.
그럼 요나는 그때부터 여호와께서 보시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보게 되었을까?
음.
생각해 봐. 왜 여호와께선 요나를 거짓 신을
섬기는 다른 나라로 보내셨을까?
니네베 사람들이 여호와를 알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요?
그럼 누가 여호와의 사랑 덕분에
유익을 얻은 거지?
음, 여호와께선 요나에게
충성스러운 사랑을 보이셨고,
선원들이랑 니네베 사람들한테도
사랑을 나타내셨네요.
잘 대답했어. 그리고 이 점도 생각해 보자.
요나가 부활되면 여호와께서 자신의 실수에 대한
기록을 사용하셨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예수께서 요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셨고,
자신을 요나에 비유하기까지 하셨잖아.
그걸 요나가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여호와는 사랑의 완벽한 본을 남기셨어.
그럼 이제 우리에게 적용해 볼까?
넌 어떻게 해 보고 싶어?
음, 호별 봉사가 떠오르네요.
솔직히 좀 힘들 때가 있어요.
아무도 제 말을 안 들을 때도 많고요.
그런데 제 감정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배웠어요.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으시니까
제가 먼저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음, 정말 좋은 점이다. 잘 찾았네.
아빠는 버거운 임명을 받았을 때가 생각났어.
처음엔 안 좋은 태도를 나타내고
부정적인 말을 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후회하고 죄책감도 들었지.
근데 여호와께서 그런 실수를 마음에
담아 두지 않으신다는 게 위로가 됐어.
그분은 우리 속마음을 다 아시고,
우리가 발전할 때까지 참을성 있게
도와주시는 분이니까.
와, 여호와에 대해 뭘 알 수 있는지 살펴보고,
단어의 의미도 찾아보고,
상상도 해 보니까 좋네요.
그치? 그런데 아직도 생각해 볼 점이 많아.
요나가 혼자 물고기 뱃속에 갇혀서
여호와께 기도드릴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또 심판의 소식을 들은 니네베 사람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통해
뭘 배울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여기를 한번 보면
이런 말이 나오는데 …
정말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요나가 격한 반응을 보였다고
그가 나쁜 사람이었다는 뜻은 아니죠.
요나서를 읽으면서 여호와의 충성스러운 사랑에 관해
더 많은 보물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전세계 회중들은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아주 특별한 주간을 기대합니다.
바로 순회 감독자가 방문하는 주간입니다.
이제 다음 영상에서
그 마련의 역사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시죠.
전 세계의 여호와의 증인에게 순회 감독자가
방문하는 주간은 정말 특별한 주간입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격려적인 연설도 듣고,
함께 즐거운 시간도 보내죠.
그런데 이 마련은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변해 왔을까요?
「살아 움직이는 우리의 역사」에서
함께 알아보시죠.
여행하는 감독자 마련은 1세기에 시작됐습니다.
바울, 바나바, 디모데 같은 형제들이
여러 회중을 방문하고 격려하라는 임명을 받았죠.
현대의 여호와의 조직도
1894년부터 비슷한 마련을 시작했는데,
대표자들을 성경 연구생 집단으로 보내서
그들을 격려하게 했습니다.
나중에 순례자라고 불리게 된 이 형제들은
여행하면서 여러 집단을 방문했습니다.
각 집단과 하루이틀 시간을 보내면서
새 힘을 주었죠.
그 당시에 여행하는 일은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초기 순례자였던
에드워드 브레니슨의 여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미국 서부의 외딴 마을에 가려면
먼저 기차를 타고
여객 마차로 갈아타 밤새 이동한 다음,
심하게 덜컹거리는 작은 짐마차를 타고
산길을 따라 한참 더 가야 했죠.
또 순례자들은 가르치는 능력이 탁월하면서도
겸손해야 했습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형제처럼요.
그레이엄 형제는 열정적인 연사였지만
연설이 좀 길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가끔은 몇 시간 동안이나 하셨죠.
러셀 형제는 이 사실을 알고 그레이엄 형제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형제가 진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아요.
열정적으로 가르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설을 하게 될 수 있죠.”
그레이엄 형제는 겸손하게 조언을 받아들여
짧지만 훌륭한 연설을 하게 됐고,
형제자매들은 그런 형제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당시에는 순례자들의 주된 역할이
공개 연설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920년대부터는 회중을 방문하는 동안
집집을 다니며 봉사하는 일에서
앞장서는 역할을 하게 됐죠.
그래서 얼마 후에 그들은 지방 봉사 지휘자로
나중에는 지방의 종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 새로운 명칭은 그들의 역할이 형제들을
섬기고 지원하는 것임을 강조해 주었습니다.
그 후에는 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1930년대 미국에서는
특별 전파 활동이 조직됐는데,
거센 박해에 맞서기 위해
여러 회중이 힘을 합쳐 함께 봉사했죠.
그러한 마련은 형제들을 더 연합시켜 주었습니다.
후에 조직을 더 체계적으로 돌보기 위해
약 20개의 회중을 묶어
하나의 지구로 분류했습니다.
또 지구의 종이 임명되어 각 회중을 방문했죠.
주기적으로 각 지구의 회중이 모두 모여
지구 대회도 열었는데
지금의 순회 대회와 비슷하죠.
1940년대에 여행하는 감독자들은
형제들의 종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안젤로 카탄차로 형제인데,
형제는 19살에 처음 그 임명을 받았죠.
나중에 형제는 자신이 “끊임없이 여행하는
봉사자”였다고 말했습니다.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카탄차로 형제 부부는
미국의 거의 모든 주를 방문하면서
형제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새로운 형제자매들을
영적으로 도와주었죠.
이 충실한 형제들은 나중에 순회의 종으로,
그리고 마침내 순회 감독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순회 감독자 형제들과
그들의 아내들은 기꺼이 희생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집을 뒤로하고 길 위에서 지내며
먼 거리를 여행하는 삶을 선택했죠.
윈스턴 페인 형제와 패멀라 자매는
20대 때 처음 임명을 받아
남태평양에서 순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섬에서 생활하면서 극심한 더위와 모기떼에
적응해야 했고 먹을 게 부족한 때도 있었죠.
하지만 페인 형제 부부는
그곳 형제자매들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면서
자신의 임명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수많은 형제들이
순회 감독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1999년부터
특별한 훈련 과정이 마련됐는데,
지금은 순회 감독자 부부 학교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네, 여행하는 형제들을 부르는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죠.
바울 시대처럼
이 충실한 형제들과 그들의 아내들이
자신을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온전히 소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봉사에서 사람들을 훈련하고,
청소년들을 격려하고, 회중을 강화하고 있죠.
다음 번에 여러분의 회중에
순회 감독자가 방문하면
그들에게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다음에도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우리의 역사」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열심히 일하는 순회 감독자들과 희생적인 아내들을
주신 것에 대해 여호와께 감사드립니다.
순회 감독자 부부와 나눈 추억이나
그들이 봉사에서 보여 준 좋은 본이 기억이 나시나요?
어쩌면 여러분이 여호와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도록 격려해 주었을지 모르죠.
물론 모두가 순회 감독자로 일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본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몇몇 형제자매들이 사람들의 필요에 맞게
어떻게 자신을 기꺼이 조정했는지 보시죠.
저흰 전도인이 더 필요한 구역으로 이사했어요.
이곳에 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저흰 4년 전에
볼리비아 케추아어 회중으로 왔어요.
-전 페르난도예요.
-전 미카엘라고요.
저흰 아르헨티나에 있는
볼리비아 케추아어 회중에서 섬기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볼리비아에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오죠.
그들은 주로 농장에서 일하는데
일이 정말 힘들어요.
밤 11시, 12시까지 일할 때도 있죠.
맞아요. 진짜 열심히 일해요.
농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제일 좋은 때는
오후 일을 시작하기 직전이에요.
근데 그 시간대는 해가 정말 뜨겁고
기온도 40도까지 올라서 좀 힘들긴 해요.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 도중에
성서 연구를 하게 될 때가 많은데
수확이나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항도 읽고 성구도 읽고 그래요.
그러다가 하느님에게 이름이 있다는 내용처럼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가 나오면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멈춰요.
그럼 ‘관심이 있구나. 우리 이야기를
주의 깊이 듣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죠.
하던 일을 다 끝낼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할 때도 있어요.
그러면 일을 더 빨리 끝내실 수 있게
저희도 좀 도와드리죠.
처음에는 도와주겠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면서
옷이 다 더러워질 텐데 괜찮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덕분에 좋은 친구가 됐거든요.
그게 우리가 바라는 거죠.
연구생과 친구가 돼야 그들이 발전할 수 있게
더 잘 도울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
한다는 걸 보여 주는 거죠.
마음이 정직한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
변화하는 걸 보는 게 정말 즐거워요.
전 봉사하는 게 정말 좋아서
전혀 힘들다고 느끼지 않아요.
-제 이름은 토니 마레로고,
-전 마릴루스예요.
저흰 스페인에서 왔고
지금은 파라과이에서 봉사하고 있어요.
팬데믹 때 저흰 거의 집에만 있어야 했죠.
완전히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 했어요.
상대방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로
전화로만 말하는 게
엄청 긴장되더라고요.
한번은 어떤 남자에게 성서 연구를 해 보자고
바로 제안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하겠다는 거예요!
그 남자한테 내일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문자로 보내 주겠다고 하니까 그러라고 했죠.
처음엔 바로 답장이 안 와서
무시하는 줄 알았는데
그날 밤 늦은 시간에 답장이 왔어요.
알고 보니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었어요.
정말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하더라고요.
그걸 안 뒤로는 그 남자 시간에 맞췄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는 아내도 같이
공부해 보겠냐는 제안을 받아들였죠.
하지만 그 뒤로도 몇 달 동안은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때는 언제 전화가 오든
바로 연구할 수 있게 준비해야 됐죠.
-언제든요.
-밤 9시나 10시, 11시에 전화가 올 때도 있었어요.
어떨 땐 5분 뒤에 가능하다고 문자가 와요.
화상 회의에 들어가 있으면 인사만 하고
얼른 작업복을 갈아입고 오죠.
준비가 다 되면 그때 시작할 수 있었어요.
처음엔 쉽지 않았죠.
네, 좀 그랬죠.
근데 연구가 너무 재밌었어요.
매번 연구를 마칠 때쯤엔 항상 …
-정말 행복했죠?
-행복했죠.
연구 마치고 서로 보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어요.
-“이거 꿈 아니지?”
-맞아요.
“아니, 이 정도로 관심을 보인다고?”
그런데 꿈이 아니었어요.
정말 진리가 필요했던 거죠.
그 부부는 배운 대로 삶을 변화시켰고
1년 만에 침례를 받았어요.
정말 행복했죠.
지금도 매일 여호와께 감사드려요.
진심으로요.
성경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맞춰서 성서 연구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사람들이 여호와와 가까워지게 도와주면
아주 큰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약 20년 전에 로살리아 필립스 자매의
체험기가 「깨어라」에 실렸습니다.
자매가 여호와를 섬기면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유익이 있었는지 보시죠.
저희 가족 중에는 유명한 가수들과
배우들이 많이 있었어요.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버지였어요.
이름은 헤르만 발데스였는데,
틴탄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죠.
음악은 제 삶의 일부였어요.
어릴 때부터 음악으로 절 표현하고 싶어서
기타도 연주하고 제 스타일로 작곡도 했죠.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꼭 가수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15살쯤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죠.
형편이 어려워져서 일을
빨리 구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어요.
저는 밴드에 들어가서 가수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걸 계기로 가수이자 배우로 점점 유명해졌죠.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정말 부도덕하고 가식적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더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배우면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요.
저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요.
저도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전보다 훨씬 생기 있고
기쁨에 넘치는 사람이 됐죠.
남편과 전 멕시코에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이 가수가 되고 싶어 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우린 아이들이 그런 쪽에
마음이 끌리지 않게 최선을 다해 도왔죠.
우리 딸 지아나가 17살이었을 때 일이었어요.
볼일이 있어서 멕시코시티의 가장 유명한
방송국에 가게 됐는데, 딸과 함께 갔죠.
거기서 한 스카우트 담당자를 만났는데
딸을 보더니 “너도 노래하니?” 물어보는 거예요.
그 사람은 딸의 노래를 듣고 정말 마음에
들어 했어요.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사무실로 딸을 초대했죠.
그 남자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이 방송국에서 가수 활동할 수 있게 해 줄게.
넌 유명해질 거야.
계약서 준비해 놓을 테니까
월요일에 와서 사인만 해.”
지아나가 나왔을 때 저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제안을 수락했냐고 물었어요.
딸이 말했죠. “아니요. 당연히 거절했죠.
여호와를 사랑하니까요.
지금처럼 파이오니아 봉사하는 게
훨씬 더 좋아요.”
그런데 그 일이 있고 일주일 후에
딸이 베델에서 진행되는 음악 작업에
참여해 달라는 연락을 받아서 깜짝 놀랐어요.
여호와를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거죠.
정말 감사하게도
그 후로 여러 해 동안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베델
음악 작업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셨어요.
때로는 사탄이 저를 시험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 곳에서 아버지 때문에
저와 함께 일하고 싶어 했어요.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시간을 많이 빼앗겼겠죠.
그러면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는 데
지장이 생겼을 거예요. 그래서 거절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제가 그런 제안을 받고
거절할 때마다 더 좋은 걸로 돌려주셨어요.
다양한 봉사의 기회를 주셨는데, 그중에는
신권 학교들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일도 있었죠.
그분은 저를 계속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
여호와를 신뢰하는 법을 배웠어요.
바울의 말처럼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그분이 자신을 진지하게 찾는 사람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라는 걸 확신하게 됐죠.
어머니와 봉사하는 게 정말 즐거워요.
어머니는 90세가 넘으셨지만
저희는 다양한 봉사를 함께 하고 있어요.
그동안 성서 연구를 하고 싶어 하는
가족들이 꽤 많았는데,
그중에 여러 명이
지금 여호와의 증인으로 섬기고 있어요.
이렇게 어머니랑 딸이랑 다 같이 함께 모여서
즐겁게 기타 치고 노래할 때마다 정말 행복해요.
신세계에서 빨리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아버지를 꼭 안아 드리고
아이들을 소개해 줄 거예요.
어머니도 정말 기뻐하시겠죠?
거기가 바닷가였으면 좋겠어요.
예전처럼 온 가족이 다 같이
노래하는 게 제 소원이에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여호와를 섬길 거예요. 영원히요.
정말 감동적인 경험담입니다.
자매가 여호와를 의지한 결과 자매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그분을 의지하기를 바라십니다.
이제 스티븐 레트 형제가 박해를 겪을 때 어떻게
여호와를 의지할 수 있는지 설명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살펴볼 내용의 주제는
“성령은 우리가 박해를 인내할 힘을 줍니다”입니다.
오늘 「파수대」 기사에서는
사탄이 사용하는 박해 형태 몇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성구인 스가랴 4:6에서는 우리가
그 어떤 형태의 박해를 받게 되든
성령이 있으면 인내할 힘을 낼 수 있다고 알려 주죠.
그러면 사탄이 우리를 박해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가 믿음을 타협하거나
여호와를 섬기기를 완전히
중단해 버리게 만드는 거죠.
잠시 사자에 관해 생각해 보실까요?
사탄은 비유적으로 말해서
삼킬 것을 찾아다니는 사자라고 할 수 있는데,
사자가 먹잇감을 삼키면
그 먹잇감은 어떻게 되죠?
소화가 되고 흡수되어서
사자의 일부가 되어 버리죠.
그게 바로 사탄이 바라는 겁니다.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우리가
그의 세상과 제도에 속하게 돼서
결국 그의 일부가 되기를 바라죠.
하지만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하느님의 백성을 박해하기 위해
사용해 온 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다섯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실 아마겟돈 전에
우리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중 어떤 형태의
박해를 받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죠.
따라서 우리는 그 어떤 형태의
박해를 받든 충절을 지키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첫 번째 박해 형태는 금지령입니다.
지금까지 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을 금지한 적이
있는 나라의 수는 총 100개가 넘습니다.
정부 형태나 정치 체제를 떠나서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우리의 활동을 금지해 왔죠.
성경 시대에도 금지령이 내려진 적이 있습니다.
기원전 522년에 성전 재건이 금지되었고,
1세기에 예수의 제자들의 전파 활동이
여러 지역에서 금지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따르지 않은 제자들은
“왕과 총독들 앞에 끌려”갔죠.
그럴 때 성령이 그들을 어떻게 도와줬습니까?
또 우리가 제자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성령은 우리를 어떻게 도와줄까요?
그 답을 알아보기 위해
마태복음 10장을 보시겠습니다.
성령이 어떻게 도와주는지 확인해 보시죠.
마태복음 10:19부터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여러분을 넘겨줄 때에,
무엇을 어떻게 말할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걱정하지 말라고 했네요. 왜죠?]
여러분이 해야 할 말이 그때에 주어질 것입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여러분만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의 아버지의 영이
여러분을 통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혼자 말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우리의 역할은 다해야겠지만 해야 할 말을
떠올릴 수 있도록 성령이 도와줄 것입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박해 형태는
투옥시키는 것입니다.
1세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감옥에 수감되는 일이 아주 많았습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21:12에서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손을 대어 …
감옥에 넘겨줄 것입니다”라고 경고하셨죠.
실제로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현대에 많은 여호와의 백성이 수감되었죠.
우리가 잘 아는 러시아와 그 동맹국들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자주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를 박해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리트레아나 투르크메니스탄,
러시아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 수감된 형제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히브리서 13:3에서 이렇게 말한 것과 같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마치 여러분도 함께 갇힌 것처럼 기억하십시오.”
지금 당장은 아닐 수 있지만
앞으로는 우리도 수감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형제들이 마치 자신들도 “함께 갇힌
것처럼” 기도해 준다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세 번째 박해 형태는
자녀들을 학교에서 쫓아내는 것입니다.
자녀가 고통을 겪으면 부모는 더 큰 고통을 겪죠.
사탄은 그 점을 이용해서 자녀를 박해해
부모가 충성을 저버리게 만들려고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40년대 미국에서 일어났지만,
사실 오랫동안 많은 나라에서 증인 자녀들이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고 퇴학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예수 시대에 그분에 대한 믿음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회당에서 추방당했던 청년과 비슷하죠.
네 번째 박해 형태는
요한 계시록 13:16, 17에 나옵니다.
거기에는 짐승, 즉 사탄의 정치 제도가
우리에게 압력을 가해서 “강제로”
우리의 오른손과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는 내용이 나오죠.
그 표를 받지 않으면 사거나
파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네 번째 박해 형태는 무엇이죠?
경제적으로 압력을 주어서 형제들이
중립 입장을 타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방법 역시 사탄이 즐겨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 가운데 한 가지죠.
정치에 참여하지 않은 형제들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고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말라위 형제들의 경우에는
25센트짜리 당원증을 사지 않아서
경제적인 피해와 온갖 끔찍한 일을 당했죠.
당원증의 가격은 얼마 안 되었지만
그걸 샀을 때 치러야 하는 영적인 대가가
너무나도 크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형제들은 타협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제 다섯 번째 박해 형태를
마태복음 5:11에서 살펴보시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여러분을 모욕하고 박해하고
여러분에 대해 거짓으로 온갖 악한 말을 할 때에,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네, 다섯 번째는 거짓 비난입니다.
대중 매체에서는 우리에 관한
온갖 거짓 비난을 널리 퍼뜨리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악귀에 들렸다거나,
신성을 모독했다거나, 탐식하고
술에 빠진 자라는 거짓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사도행전 28:22에서 “우리는 이 분파가 어디서나
반대하는 말을 듣는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죠.
이걸 보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비난을 받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거짓 비난을 받지만
성령의 도움으로 잘 인내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박해의 다섯 가지
형태에 관해 살펴보셨는데요.
금지령을 내리고, 감옥에 가두고,
자녀들을 학교에서 쫓아내고,
경제적 압력을 가해서 중립을 타협하게 만들고,
거짓 비난을 하는 거였죠.
물론 이 다섯 가지 말고도
다양한 형태의 박해를 받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박해든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 잘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을 받고,
성령이 계속 흐르게 할 수 있을까요?
세 가지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1:13에서는 ‘아버지께서
청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실’ 거라고 했죠.
따라서 첫 번째 방법은 기도로 청하는 겁니다.
두 번째로, 성령이 작용하는 활동을 해야 합니다.
집회 참석, 전파 활동, 성경 읽기를 통해
성령이 계속 흐르게 하는 거죠.
세 번째로, 에베소 4:30에서 말하는 것처럼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흐름을 방해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거죠.
따라서 기도로 성령을 청하고, 영적인 활동을 하고,
성령의 흐름을 방해하는
어떤 일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인 성령이
우리 각자에게 힘을 줄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네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먼저 요한복음 14:26에서
예수께서는 성령이 우리를 “돕고”, “가르치고”,
그분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해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생각나게 한다”는 말은 성령이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기억하고
떠올리게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이죠.
따라서 박해를 받을 때 여호와께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의 성령이 그 순간 필요한
내용이 떠오르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방법이 요한복음 16:13에
나오는데 예수께선 성령이 우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셨죠.
네, 네 가지를 살펴보셨는데요. 성령은 우리를
돕고,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고, 인도해 줍니다.
만일 지뢰밭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우리를 인도해 준다면
얼마나 안심이 되겠습니까!
네, 우리가 하느님의 성령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어떤 형태의 박해를 받게 되든
마귀에게 삼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 세상에 흡수되거나
이 세상의 일부가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박해를 성공적으로 인내하고,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이러한 표현에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군대로도, 힘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영으로 된다.”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인 성령의 도움을 매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이번 달 뮤직비디오에서 한 형제가
힘든 시기에도 희망을 밝게 유지할 수 있도록
성령이 어떻게 힘을 주었는지 함께 보시죠.
여호와, 당신은
공의로우신 분.
나보다 더 이 시련을
아파하십니다.
때론 내 맘 억눌리고
분노 타올라도,
당신만이 이 모든 걸
갚아 주시리.
여호와여, 당신을
난 기다립니다.
참된 그 공의를
이루어 주소서.
차가운 방, 끝없는 밤
날 무너뜨려도.
내 가족이, 이 세상이
날 약하게 해도.
준비했던 내 마음을
강하게 하소서.
내게 주신 그 평화로
난 굳게 섭니다.
여호와여, 당신을
난 기다립니다.
참된 그 공의를
이루어 주소서.
공의! 이루실 그날,
내 두 눈이 보리라.
공의! 이뤄 주소서,
이 눈물과 고통
다 사라지리니.
여호와여, 당신을
난 기다립니다.
참된 그 공의를
이루어 주소서.
형제는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결코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의 분한 감정이라는 방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을 주는 장소들을 찾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봉사를 하고 왕국회관에 가고
형제들을 찾아가는 상상을 했죠.
이번 달 방송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어떤 유익한 점들을 발견하셨습니까?
우리의 한정된 감정 에너지를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죠.
관심을 가진 사람과 성서 연구를 하기 위해
기꺼이 일정을 조정하면
봉사에서 더 큰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요나서를 깊이 연구하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죠.
마치기 전에 몬테네그로로 가 보겠습니다.
몬테네그로는 베네치아 지방에서 사용하는
이탈리아어로 “검은 산”이라는 뜻입니다.
몬테네그로의 산들을 뒤덮은
어두운 숲을 묘사하는 표현이죠.
이름의 뜻과는 달리 몬테네그로에서는
다양한 색과 동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아드리아 해안의 빛나는 보석과 같죠.
타라강 협곡은 유럽에서
가장 깊은 협곡 중 하나입니다.
스쿠타리 호수는 발칸반도에서 가장 큰 호수이고,
이 호수에는 거의 280종에 달하는 새들이 사는
조류 보호 구역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대 도시 코토르를 방문해서
멋진 경치를 즐기고 아름다운 골목을 걷고
구불구불하기로 유명한 도로에서 자전거를 탑니다.
몬테네그로의 현대 역사는
전쟁과 고난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1918년에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왕국에 병합되었죠.
1929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 왕국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코소보,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슬로베니아가 포함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되었다가
20세기 말에 해체되었습니다.
2006년에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몬테네그로 사람들은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정직, 겸손, 자기 희생, 존중심과 같은
특성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죠.
1920년대에 세르비아 출신의
젊은 남자인 프란츠 브란트는
오스트리아에서 한 강연을 듣고
처음으로 좋은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연은 방해를 받아 곧 중단되었죠.
하지만 그는 강연의 내용을 잊지 못해서
진리를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고향에 돌아와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 슬로베니아의 마리보르로 이주해서
이발사로 일했는데,
손님들에게 면도해 주면서 봉사했죠.
손님들은 그의 말을 가만히 들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친위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알프레드 투체크가
동료에게서 성경 출판물을 받았습니다.
그는 군악대 지휘자라는
보수가 좋은 직업을 포기하고
구유고슬라비아의
초기 파이오니아로 봉사했습니다.
1930년대 초에 그는 형제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창조 사진극을 상영하는 일을 했습니다.
또 아내 프리다와 함께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현재의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을 다니며 봉사했죠.
몬테네그로의 전도인 수는
2024년보다 4퍼센트 증가한 432명입니다.
형제자매들은 정말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데,
거의 3분의 1이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북부와 남부의 풍경은 아주 다른데
그만큼 봉사 방법도 서로 다릅니다.
몬테네그로의 수도인 포드고리차에 있는
포드고리차 북부 회중은
아주 넓은 봉사 구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몇 전도인들은 왕국회관에서
1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살고 있어서
집회에 참석하려면 거의 두 시간이 걸리죠.
포드고리차의 형제자매들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먼 곳에 있는 마을을 찾아갑니다.
그곳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죠.
형제자매들은 공원에 모여서
봉사 모임을 갖는 것으로 시작해서
하루 종일 봉사하고,
화상 회의로 집회에 참석하고,
그곳의 형제자매들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집에 돌아오기도 합니다.
남부 지역은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합니다.
어떤 때는 관광객들의 수가
현지 주민들의 수의 두 배나 되기도 하죠.
그처럼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기에
회중들은 공개 증거에 집중하고
비수기에는 집이나 가게를 방문합니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좋은 결과가 있었는데
2024년에는 759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헤르체그노비 회중의 37명의 형제자매들이
여러분 모두에게 따뜻한 사랑과 안부를 전합니다.
지금까지 여호와의 증인의 세계 본부에서
JW 방송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