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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 방송—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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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 방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어떤 아버지이실까요?
그 답을 알아보면서
그분의 가족이 되면 우리가 얼마나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여호와를 굳게
의지한 한 자매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또 나훔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물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에 두 가지 새로운 동영상
시리즈를 발표하게 되어 기쁩니다.
첫 번째 시리즈는
전 시간 봉사를 할 때 여호와께서 어떻게
우리를 훈련시켜 주시는지 보여 줍니다.
두 번째 시리즈는
다양한 봉사를 수행하는 형제자매들의 일상을
가까이서 들여다보게 해 줍니다.
그럼 이제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가족을 잘 돌보는 사랑 많고
다정한 사람이 떠오를 수도 있고,
가족에게 무관심하고 심지어 학대하기까지 하는
사람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건 여러분의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단어가
왜 우리에게 중요할까요?
성경에서 여호와를 아버지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아버지로 여기기를 바라십니다.
여호와에 관한 다양한 칭호가 있지만
예수께서 여호와를 “아버지”라고
자주 부르신 것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죠.
그와 마찬가지로 성경에는
예수에 관한 칭호도 많이 나오는데,
그중에는 숙련된 일꾼, 말씀,
천사장 미가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예수께서는
여호와의 아들로 알려지셨죠.
그리고 예수의 대속 희생 덕분에 여호와께서는
불완전한 우리 역시 그분의 자녀로 여겨 주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와 가깝고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와 자녀 사이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 “아버지”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우리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지 잘 보여 줍니다.
그분은 가족을 사랑하시죠.
이사야 64:8에서는 그 점과 관련해서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러나 오 여호와여, 당신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당신은 도공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당신이 손수 만드신 것입니다.”
네, 성구의 표현이 정말 멋지네요.
“당신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인간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든지 상관없이
여호와는 훌륭한 아버지이십니다.
성경 전체에서 그분이 어떤 아버지이신지 알려 주죠.
복음서에서만 해도 예수께서 아버지라는 표현을
160번 이상이나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요점은 여호와께선 우리를
가족으로 여겨 주신다는 거죠.
여호와가 어떤 아버지이신지 알고 그분의 특성과
우리에 대한 사랑을 더 잘 이해하게 될수록
우리는 하늘의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더 신뢰하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여호와와
그러한 가까운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 걸까요?
창세기 1:26의 첫 부분을 함께 읽어 보시죠.
여기서 여호와께서는 인간 자녀를
창조하는 일에 대해 예수와 이야기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를 닮은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여호와께서는 사람을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자녀가 부모의 특성을 닮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그럼 우리가 가진 어떤 특성이 여호와와 닮았을까요?
신체적인 특성은 아닙니다.
여호와는 영이시니까요.
요한 1서 4:8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 줍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분의 주된 특성인 사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가족을 정말 사랑하는
다정한 아버지와 같으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닮은 자녀들이기 때문에 우리도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네, 바로 사랑이 우리가
여호와와 맺는 관계의 기초가 됩니다.
이제 어떤 세 가지 방법으로
여호와께서 사랑을 나타내시는지 살펴보시죠.
첫째로 사랑 많은 아버지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돌봐 주십니다.
함께 베드로 전서 5:7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염려를 모두 그분에게 내맡기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돌본다고 하면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이 떠오를지 모릅니다.
그것도 중요한 일이죠.
그럼 여호와께서도 단지 물질적인 필요만
채워 주십니까?
아닙니다.
고린도 후서 1:3, 4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아버지,
[여기를 유의해 보시죠.]
부드러운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느님은
찬양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온갖 시련을 겪을 때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는 “부드러운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물론 그분은 우리의 물질적 필요를 돌봐 주시지만
훨씬 더 많은 것들도 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감정적 필요까지도
돌봐 주십니다.
우릴 위로해 주시죠.
그분은 우리를 물질적으로,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돌보십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다쳐서
병원에 갔다고 생각해 보시죠.
의사는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잘 치료해 줄 테니 안심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가 실력이 좋은 의사인 데다가
여러분의 아버지라면 어떨까요?
아버지는 여러분을 최우선으로 치료해 줄 겁니다.
단지 치료만 해 주는 정도가 아니겠죠.
매일매일 여러분의 곁에 있으면서 돌봐 줄 겁니다.
정말 안심이 되지 않나요?
우리의 아버지께서도 그렇게 돌봐 주십니다.
우릴 사랑하시니까요.
우리 아버지 여호와는 정말 유능한 의사이시고
모든 고통과 고난을 없앨 날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일도 해 주시죠.
그분은 “부드러운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에게 관심이 있으시고
이 세상 제도가 끝나기 전에도, 후에도
한결같이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돌봐 주십니다.
그런 여호와의 돌봄과 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으신가요?
여호와의 사랑과 자비를 본받는 회중의 따뜻한
형제자매들을 통해 돌봄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또 성경 기록으로부터 큰 힘을 얻고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어떤 성구를 읽으면서 새로운 점을 알게 되고
교훈을 얻기도 하죠.
이러한 여호와의 돌봄은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여호와는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고
영원히 돌봐 주실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로 여호와께서 사랑을 나타내시는 방법은
우리가 속마음을 다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족은 마음을 터놓고 편하게 이야기합니다.
많은 가족들이 저녁 식사 시간에 함께 모여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죠.
앞서 읽어 본 베드로 전서 5장에서 여호와께서는
“염려를 모두 그분에게 내맡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선 하늘에 계신데
어떻게 그분과 대화할 수 있습니까?
기도를 통해 할 수 있죠.
우린 기도로 여호와께 무엇이든 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요즘 걱정되는 일, 즐거운 일,
또 목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고
그분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릴 수도 있죠.
여호와께서는 사랑 많은 아버지가 자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그분은 기도를 단지 듣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응답해 주기까지 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성경에 그분의 생각을
기록해 두셨습니다.
우릴 위해서요.
우리가 성경과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
제공하는 영적 양식을 읽고 묵상할 때
여호와께서는 성령을 사용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점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의 생각을 그분의 생각과
일치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또 여호와께서는 형제자매들이나 그분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을 사용해서도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우리 모두 기도의 응답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죠.
응답을 경험했을 때 잘 적어 놓고 가끔 읽어 보세요.
그런데 때때로 기도의 응답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 기도는 여호와께 중요하지 않다거나
다른 사람의 기도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참을성을 나타내야 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 가족이 할머니 댁에 가고 있다고
한번 상상해 보겠습니다.
부모님은 10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렇게 묻죠.
“다 왔어요?
언제 도착해요?”
아이들은 당연히 빨리 도착하고 싶어 할 겁니다.
하지만 어쨌든 10시간이 걸린다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도착할 때까지 다른 걸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게 낫죠.
우리는 현 세상의 끝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사실 오늘 당장에라도 끝이 오길 바라죠.
여호와께 이렇게 묻는 것과 같습니다.
“대체 끝이 언제 오나요?”
물론 끝이 오기를 기도해야 하지만
할머니 댁에 가는 아이들처럼 그 기도가
응답되기까지 참을성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런데 참을성을 나타내야 했던 건
아이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도 함께였죠.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만 참고 있는 게 아니라
여호와께서도 우리와 함께 참고 계시다는 걸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끝은 제때에 반드시 옵니다.
그때까지 여호와를 섬기며 바쁘게 지낸다면
시간이 더 빨리 갈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사랑 많은 부모라 해도 아이가 하는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그가 “육체의 가시”라고
부른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생각해 보시죠.
여호와께서는 바울에게
기적을 행할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바울이 “세 번이나”
간청했을 때에는 그 요청을 들어주지 않으셨죠.
바울에게 “나의 과분한 친절이
너에게 충분하다”라고 답하셨습니다.
바울의 육체의 가시를 없애 주지는 않으셨지만,
그가 계속 인내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셨죠.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도
시련을 인내할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그런 아버지의 도움을 신뢰한다면
시련을 잘 이겨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거나,
바울처럼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 해도
우리는 여호와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21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계명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여길 유의해 보시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말씀과 그분의 본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때
여호와께선 진심으로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해 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 아버지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정말 놀라운 특권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랑을 나타내시는 한 가지 방법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십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키우는 게 정말 보람이 있지만
그만큼 힘들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말을 잘 듣는 자녀라도 그렇죠.
사실 부모님 속을 한 번도
안 썩여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 주는 많은 일들 중
몇 가지만 생각해 볼까요?
자녀를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입혀 주고,
함께 놀아 주기도 하고,
아프면 병원에도 데리고 가고,
교육도 시켜 주고, 징계도 하죠.
잠시만요, 징계라고요?
징계라고 하면 벌을 주는 게
먼저 떠오를지 모릅니다.
그것도 징계의 한 방법이죠.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징계에는 인도하고
가르치고 훈련하고 시정하는 것이 모두 포함됩니다.
따라서 징계는 나쁜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베풀어 주니까요.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영원히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때때로 그분은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우리를 인도하고 가르치고 훈련하고 시정하시죠.
우리가 더 영적인 사람으로 발전하게 해 주십니다.
그분은 성경, 충실한 종이 제공하는 영적 양식,
장성한 형제자매들을 통해 징계하시죠.
그 덕분에 우리는 여호와를
더 잘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많은 수고를 해야 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행복하게 열심히 일하고 있죠.
여호와께선 그런 노력을 고마워하십니다.
그리고 그분도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십니다.
사랑 많은 아버지이신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위해
수천 년 동안 열심히 일해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창조물을
좀 떠올려 보실까요?
아름다운 노을, 맛있는 음식, 즐거운 음악,
향기로운 꽃 같은 것들 말이죠.
그리고 친구들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과
많은 영적 마련들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아버지께서 주신 선물이죠.
여호와께서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니까요.
이 연설을 시작하면서 “아버지”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시냐고 여쭤봤는데요.
우리의 인간 아버지가 어떤 분이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거라고 했죠.
그런데 아버지 없이 자란 분이라면 어떻습니까?
그런 분이라면 시편 68:5에 나오는 이러한 여호와의
따뜻한 사랑의 표현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느님은
아버지 없는 아이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보호자.”
여호와께서는 하늘의 “거룩한 처소”에서
여러분의 상황을 모두 보고 계시고
여러분을 자신의 소중한 가족으로
특별하게 언급하십니다.
성구 표현을 다시 보면 하느님은
“과부들의 보호자”시고,
“아버지 없는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너에게 아버지가 없고 아버지의 따뜻한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걸 다 알고 있단다.
하지만 너에겐 내가 있어.
내가 너의 아버지란다.’
반대로 아버지는 계시지만 여호와를 섬긴다는
이유로 반대를 받고 있다면
마가복음 10:29, 30에 나오는
특별한 약속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말씀이죠.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나를 위해 또 좋은 소식을 위해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밭을 버린 사람은
지금 이 시대에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밭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오는 세상 제도에서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 때문에 부모님이나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면 기억하세요.
여러분은 여호와의 가족입니다.
전 세계에 있는 수백만 명이나 되는 형제자매들이
여러분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증인이 아닌 가족들도 여호와를
섬기게 될 거라는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각자의 상황이 어떠하든 여호와를 섬기는 우리는
그분의 놀라운 가족의 일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앞으로도 항상 사랑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곧 현 세상을 끝내시고
죄가 없어지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낙원을 가져오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여호와께서는 따뜻하게
우리를 돌봐 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듣고
다양한 방법으로 응답해 주시며,
그분의 가족인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도록
계속 열심히 일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이 모든 일에 더해
그 이상의 일도 해 주시죠.
가족을 사랑하시니까요.
따라서 우리도 이사야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외칩시다.
“오 여호와여, 당신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베설 로디시 자매는 22살의 나이에 브루클린
베델에서 일해 달라는 초대를 받았지만
뇌종양으로 인해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매의 경험담이 「깨어라!」
1990년 5월 1일호에 실려 있습니다.
그 이후로 자매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더욱 온전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9월 말쯤이었던 것 같아요.
아침에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브루클린 베델에서 3개월간
일해 달라는 초대 전화였어요.
근데 그 전화를 빨리 끊어야 했죠.
병원 진료 예약이 있었거든요.
의사가 들어오라고 하더니 검사를 해 보니까
머리에 큰 종양이 있다고 했어요.
가족들한테 빨리 연락을 하라고 했죠.
다행히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났고,
수술은 총 두 번을 받았어요.
두 번째 수술이 끝나고 의사 선생님은 기뻐하면서
종양이 완전히 제거됐다고 말해 주셨어요.
일 년도 안 돼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죠.
1990년 봄에 브루클린에 집을 구했어요.
거기서 남편을 만났고 우린 결혼하기로 했어요.
남편과 함께 베델 봉사 지원서를 썼죠.
같이 봉사할 수 있게 돼서 정말 좋았어요.
근데 몇 년 뒤에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어요.
2년 뒤에는 둘째가 생겨서
그렇게 우린 네 식구가 됐죠.
그런데 셋째를 임신한 지 3개월 정도 됐을 때
아이를 유산했어요. 정말 슬펐죠.
병원에 다녀오는 동안
어머니가 애들을 봐 주셨어요.
어머니는 애들한테 아기는 오늘
같이 안 올 거라고 미리 말씀해 주셨어요.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이 달려왔어요.
저는 감정이 북받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남편이 우리를 다 끌어안더니
아기가 죽었다고 애들한테 말해 줬죠.
우리는 애들한테 부드럽지만
직접적으로 얘기해 주기로 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동생이 어떻게 됐는지
솔직하게 설명해 주고
이런 안 좋은 일도 생길 수 있다는 걸 말해 줬죠.
그렇게 해서 가족이 함께
슬픔을 이겨 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동안 준비해 놓은 아기 옷들을 보는데
마음이 너무 힘들었어요.
이 옷들을 꼭 입혀 주고 싶었는데.
아기를 잃고 5개월 정도 지났을 때
하루는 집회에 갔는데
눈물이 나더니 멈추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나와서 차에 가 있었어요.
그런데 친한 자매 두 명이 그걸 보더니
따라 나와서 저랑 같이 있어 줬어요.
손도 잡아 주면서 제 얘길 잘 들어 줬죠.
제가 떠나보낸 아기나 우리 애들
이야기를 할 때 그냥 계속 잘 들어 줬어요.
덕분에 기분이 많이 나아졌어요.
그래서 우린 곧 다시 왕국회관에
들어갈 수 있었죠.
여호와께서는 회중의 형제자매들을
보내서 우리를 도와주셨어요.
형제자매들은 바쁜데도 금요일 저녁 같은 때에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식사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면서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 줬어요.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슬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어요.
형제자매들을 통해
여호와의 사랑을 많이 느끼면서,
나도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형제자매들한테
문자나 카드를 보내거나
직접 만나서 “사랑해요”, “힘내세요”
이런 말을 자주 해 주려고 해요.
돌아보면 여호와께서 저를
붙잡아 주셨던 순간들이 떠올라요.
어떤 날은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못 일어날 것 같다.
봉사도 못 가겠고 집회도 나가기 힘들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다들 있잖아요.
그럴 때 여호와께서는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힘을 주세요.
신명기 33:27의 말씀대로
우리에게 해 주시는 거죠.
“옛 시대부터 하느님은 도피처이시며
그 영원한 팔로 당신을 떠받쳐 주십니다.”
시련을 통해 제가 배운 건
여호와의 도움이 있다면
극복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믿음과 같은 그리스도인 특성을 기를 때
시련을 인내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로디시 자매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리스도인 특성을 기르는 한 가지 방법은
전 시간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봉사는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늘의 아버지의 특성을 본받을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이 새로운 시리즈를
발표하게 되어 기쁩니다.
제목은 「전 시간 봉사를 하면서
기를 수 있는 그리스도인 특성」입니다.
이 시리즈는 형제자매들이 일상생활에서
영의 열매를 나타내는 데 전 시간 봉사가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보여 줄 것입니다.
이제 이 시리즈의 첫 번째 동영상을 보시죠.
「전 시간 봉사를 하면서 기를 수 있는
그리스도인 특성—사랑」입니다.
저는 작은 마을에서 자랐어요.
거기 사람들은 거의 다 같은 부족 출신이고
같은 언어를 썼죠.
그래서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고
행동하는 것도 다 비슷했어요.
그러다가 왕국회관 건축 팀에서 일하게 됐는데
저한텐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그동안 저랑 비슷한 사람들만 보다가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인종도 다른 사람들이랑 섞여서 일해야 했으니까요.
그러면서 제가 편견도 좀 있고
그동안 우리 부족 사람들,
우리 문화권 사람들한테만
사랑을 보여 왔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사랑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저도 남편과 함께
왕국회관 건축 팀에서 봉사하고 있는데요.
다 같이 일하고, 함께 생활하고,
힘들 때는 같이 울어 주기도 하는
정말 따뜻한 사람들이에요.
진짜 가족 같죠.
그런데 처음부터 그렇게 느꼈던 건 아니었어요.
처음 이 팀에 올 때는
익숙한 환경을 떠나야 했으니까요.
친한 회중 사람들이랑 고향 친구들을
떠나야 해서 힘들었어요.
여기 와서 고향에서 받은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때도 있었죠.
그런데 고린도 전서 13:4을 읽고
내가 사랑을 나한테 익숙한 방식으로만 보여 주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정한 그리스도인 사랑을 나타내려면
더 노력할 부분들이 많았죠.
외국에서 순회 활동을 하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점 하나는
사랑과 공감을 훨씬 더 많이
나타내야 한다는 거였어요.
하루는 제가 연설을 하는데 한 형제가 늦게
들어오더니 자리에서 졸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 연설이 그렇게까지 지루하진 않은데,
늦게 온 데다가 꾸벅꾸벅 졸기까지 하니까
기분이 좀 나쁘더라고요.
그런데 그 형제가 일주일에 6일을 하루에
12시간 넘게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게 떠올랐어요.
제 사랑이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죠.
저는 가족 중에 증인이 없어서
형제자매들이 제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형제자매들 중에는 정말 힘들게 증인 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그래서 그런 분들과 최대한 빨리
가까워지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 생각만큼 잘 안 되더라고요.
솔직히 상처받은 때도 있었어요.
‘왜 그러지? 왜 마음을 빨리 안 열지?’ 했는데
남편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당신도 그렇지 않아?
마음을 표현하는 게 어려울 때가 있잖아.”
생각해 보니까 그 말이 맞더라고요.
그때 중요한 걸 배웠죠.
자매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더 기다려 주고,
더 많이 사랑을 나타내고,
더 이해심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를 훈련해 주시죠.
저도 왕국회관 건축 일을 하면서
여호와께 훈련을 많이 받아서
더 빨리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피부색이나 언어나 문화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볼 수 있게 됐어요.
LDC 건축 그룹에서 일하는 동안 여호와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어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지 다 안다고 생각하니?
내가 진정한 사랑이 어떤 건지 보여 줄게.”
이제 저는 어디에서 누구와 일하든 가족 같은
강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게 됐어요.
전 시간 봉사를 하면서 유익이 정말 많았어요.
특히 형제자매들에게 공감해 주면서
사랑을 더 잘 나타낼 수 있게 됐죠.
전 시간 봉사를 한 덕분에 형제자매들이랑
가까이 지내고 시간도 많이 보낼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형제자매들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게 됐죠.
그게 결혼 생활에도 도움이 됐어요.
순회 활동을 하면서 자매들의 말을
잘 들어 주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집에서도 남편의 말을 더 잘 들어 주게 됐죠.
형제 사랑을 기를 때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
가족 같은 끈끈한 유대감, 더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능력, 참을성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이 새로운 시리즈가 여러분 모두에게
전 시간 봉사를 시작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앞선 연설에서 우리 아버지 여호와께서
우리를 징계하신다고 했죠.
그중 한 가지 방법은
생각나게 하는 말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다음 아침 숭배 영상에서
트로이 스나이더 형제가
여호와의 생각나게 하는 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설명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다시 상기시켜 드릴게요.”
“이 점을 잊지 마세요.”
“다시 한번 떠올려 보세요.”
이런 말을 들으면
‘다 아는 내용이네’라고 생각하시나요?
안 그래도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반복해서 자꾸 말하니까 짜증이 나시나요?
아니면 ‘내가 무언가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시나요?
그런데 여호와의 생각나게 하는 것들은 다릅니다.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죠.
그 점과 관련해서 함께
시편 119편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 성구는 여호와의 생각나게 하는 것들에
어떤 힘이 있는지 알려 줍니다.
2절과 3절을 보시죠.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생각나게 하는 것들을
준수하는 이들,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찾는 이들.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않으며
하느님의 길로 걷습니다.”
네, 하느님의 생각나게 하는 것들을 따를 때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그분의 생각나게 하는 것들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주고
그분의 길에 머물러 있으려는
우리의 결심을 강화해 줍니다.
3절에 보면 의를 행하고
하느님의 길로 걷게 도와준다고 했죠.
그리고 특히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를 도와줍니다.
여호와의 생각나게 하는 것들은
복잡한 도로의 표지판과 같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죠.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주고
거기서 벗어나면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그럼 여호와의 생각나게 하는 것들의
한 가지 예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함께 베드로 전서 2장을 펴 보시죠.
13절과 1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어떤 점을 상기시켜 주시는지
유의하면서 읽어 보시죠.
“주를 위해, 인간이 만든 모든 것에 복종하십시오.
위에 있는 왕에게도,
잘못을 범하는 자들을 처벌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들을 칭찬하도록
왕이 보낸 총독들에게도 복종하십시오.”
성구에서 베드로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중립을 유지하고 정부에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권위를 허용하시니까요.
이것은 새로운 교훈이 아니라
상기시켜 주는 말이었죠.
그들은 하느님의 왕국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라”는 예수의 말씀도 이해했죠.
그리고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사도들의 말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들에게 이 성구의 말이 왜 필요했을까요?
그들이 매우 분열된 세상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으로 분열된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중립을 지키라는
이 교훈을 다시 떠올려야 했죠.
이 교훈은 그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었습니까?
13절을 다시 보시면
앞부분에 “주를 위해”라고 했죠.
그들의 시야를 넓혀 준 겁니다.
정부에 복종하는 것이 정부의 정책이나
전쟁을 지지한다는 뜻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허용하신 권위를 존중하고
그분이 모든 문제를 바로잡으실 때를
기다린다는 뜻임을 알려 준 것이죠.
따라서 정부의 일에 일일이
반대할 필요가 없었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성구의 교훈을 통해 왕국과
좋은 소식을 전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교훈을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번 받았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위에 있는 권위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그 권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또 베드로 전서와 비슷한 시기에 기록된 디도서에서도
정부에 복종해야 한다는 점이 다시 언급되었죠.
이 모든 생각나게 하는 말들은
그들이 계속 중립을 유지하고
여호와의 편에 서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말들은 특히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시기적절했는데
그들이 곧 박해를 받게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교훈을 잘 따를 때
여호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점과 관련해서 이어지는 15절을 보시죠.
13절과 14절에는 정부들에
복종하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제 15절을 함께 읽어 보시죠.
“하느님의 뜻은 여러분이 선을 행하여
비합리적인 사람들의 무지한 말을
잠잠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훌륭한 행실을 보일 때
여호와께서 그 행실을 사용해서
그들이 박해를 이겨 내고 계속 그분을
섬길 수 있게 도와주실 것이었습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박해를 이겨 냈죠.
지금 시대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나라에서 우리 형제자매들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받았는데,
얼마 후에 그 나라에서 내전이 일어났습니다.
형제들은 교훈받은 대로 정부에 복종하고,
그러면서도 중립을 유지했습니다.
내전이 끝나고 정부는 국민들을 결속시키기 위해
몇 가지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법 가운데 하나는 혼인 신고를 하기 위해
국가 의식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죠.
그건 그리스도인 중립에 어긋나는 일이었죠.
형제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정부 관리를 찾아가서 그들이 내전 중에도
중립을 유지했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관리들은 형제들의 중립 입장을 알고 있었고
존중해 주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죠.
“여러분을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오래지 않아 정부는 증인들이 중립을 지키면서도
법을 따를 수 있도록 그 법을 수정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형제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고
좋은 행실을 보인 덕분이었죠.
우리는 정기적으로 하느님의
생각나게 하는 말들을 듣고 있습니다.
중앙장로회 보고를 생각해 보시죠.
최근에 우리는 사랑에서 우러나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어디든
그곳에서 봉사하기 위해 노력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제안을 잘 따를 때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또 죄를 짓거나 참숭배를 떠난 사람을
여호와께서 어떻게 보시는지,
어떻게 여호와와 함께 그들이 다시 돌아오도록
도울 수 있는지에 관해서도 들었습니다.
이러한 보고를 통해서 우리는 성경 원칙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죠.
옷차림과 몸단장에 관한 교훈도 있었습니다.
시대가 계속 변하면서
다양한 스타일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는 항상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옷차림을 해야 합니다.
또 믿음 때문에 투옥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말도 들었죠.
그리고 박해를 받고 감옥에 갇혀도 계속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도 배웠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도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받았습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처럼 말이죠.
왜냐하면 우리도 매우 분열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편에 서서
정치, 사회 문제를 두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 보고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이 점을 상기시켜 드리는 이유는
사탄이 세상에서 어느 한 편을 들도록
그 어느 때보다 큰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생활을 위한 성경 구절들」의
“정부” 항목 아래 나오는 원칙들을
살펴보라는 제안도 해 주셨죠.
그렇게 할 때 그 원칙들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아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변호할 준비를 갖추게 되고
여호와의 백성과 계속 연합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전 시간 봉사자들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을 용서하고
다른 부서나 형제자매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평화를 이루고 연합을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계속 받고 있습니다.
그 교훈을 잘 따를 때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또 바빠도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받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읽기를 통해 여호와께서
해 주시는 말씀을 매일 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감독자들은 가장 중요한 일이
양들을 돌보는 일이라는 말을 계속 듣습니다.
업무를 바쁘게 수행하다 보면
일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고
여호와의 양들을 잊어버리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이 들 때
그런 감정과 싸워야 한다는 교훈도 받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서 좋은 점을 보신다는 걸 기억해야 하죠.
그분은 자비로우시고 마음이 찢긴 사람들에게
가까이 계십니다.
네, 우리는 여호와의 생각나게 하는 것들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 교훈을 밀접히 따라야 하죠.
시편 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19편 11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당신의 생각나게 하는 것을
영속하는 재산으로 삼으니,
그것이 내 마음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생각나게 하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줍니다.
우리를 연합시켜 주고, 그분의 길로
계속 걷게 해 주고, 그분과 가까워지게 해 줍니다.
여호와의 생각나게 하는 것들에 대한
아주 훌륭한 교훈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잘 들을 때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형제자매들을 위해 일하려는 열망이 자랍니다.
혹시 건축 봉사나 베델 봉사가
궁금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이미 그런 봉사를 하고 계신 분들이라도
또 다른 형태의 봉사가
궁금했던 적이 있으실지 모릅니다.
이제 그러한 다양한 임명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새로운 시리즈를 발표하게 되어 기쁩니다.
제목은 「나의 하루를 소개합니다」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여러 가지 임명을
수행하는 전 세계의 형제자매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떤 하루를 보내며
살아가고 있는지 자세히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보실 첫 번째 영상의 제목은
「나의 하루를 소개합니다—번역자」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한나 자매입니다.
한국 수어 번역부에서 번역자로 일하고 있어요.
번역부에서는 영어로 준비된 영적 양식을
임명된 각 언어로 번역을 하는데요.
정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자연스러운 표현을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수어 번역은 글을 영상으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손과 얼굴 표정을 사용해서
사상을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오늘 번역할 내용을 지금 읽어 보고 있는데요.
어떤 구조로 내용을 이어 나갈지,
또 중요 사상이 무엇인지,
수어 표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면서 분석하고 있어요.
번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언어 능력이 필수적인데요.
저의 경우는 제가 수어는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자신만만하게 번역 일에 참여했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제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번역자로 훈련을 받으면서 수어 문법이나
구조도 더 생각하게 되고,
농인분들이 실제 사용하는 어휘나
다른 언어 출판물들도 많이 보면서
더 능숙하게 정확한 사상을
전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번역부에서는 보통 세 명의 형제자매들이
팀으로 번역을 하고 있는데요.
함께 토의하면서 번역이 정확하고
자연스러운지 계속 확인합니다.
수어는 번역된 내용을 기록해 둘 수 없기 때문에,
번역한 내용을 이렇게 비디오로 녹화해 두고 있어요.
오늘 번역하는 내용이 고래에 대한 내용인데요.
서로 사용하는 고래라는 수어가 좀 달라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수어가
무엇인지 지금 토의하고 있어요.
번역할 때 가끔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팀원 모두 서로
머리를 맞대서 같이 생각하다가
모두가 동의하는 딱 맞는 표현을 찾게 될 때
‘아, 여호와께서 정말 도와주신다’는
느낌이 들어서 정말 좋아요.
한국 수어 번역부에는 정말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계신 형제자매들이 많이 계세요.
번역부에서 같이 일도 하고,
회중 활동도 함께 하고, 같이 다니고,
정말 가족처럼 지내고 있어요!
하나, 둘, 큐!
요즘 번역 단계가 많이 간결해지면서
번역자들이 직접 촬영도 하고
편집까지 하도록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좀 어렵고 좀 버겁기도 하고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필요한 훈련과 교육을 해 주셔서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셋, 넷.
오케이! 좋습니다!
또 현지 언니랑은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같은 회중이고 같이 방짝으로까지 지내고 있어요.
언니랑 모든 부면을 공유하고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아요.
번역 일을 할 때는
저의 유익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의미나 수어의 자연스러운 표현에
더 신경을 많이 씁니다.
나중에 출판물로 번역된 내용을 볼 때는
여호와께서 개인적으로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이 점이 달라요.
번역할 때 정말 여러 번 보고 생각했던 출판물들도,
개인 연구할 때 보면 또 다른 각도로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시간을 내서 온전히 내 것으로 영적 양식을
섭취해야만 저에게 유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청각 장애인이셔서
어릴 때부터 수어를 배웠어요.
번역자로 일하면서 소수의 농인분들을 위해서
많은 형제자매들이 노력하고 있는
부면들을 보고 정말 감동을 많이 받았고요.
아버지의 사랑과 손길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농인분들이 쉽게 이해하고
마음에 이를 수 있도록
정말 최선을 다해
번역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수어를 사용하는 형제자매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에 참여할 수 있어서
정말 큰 만족감과 보람을 느껴요.
특히 부모님이 여호와와 더 가까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번역자로 일하면서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일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이 특별한 봉사의 기쁨을 다른 형제자매분들도
맛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 자매가 중요한 점을 이야기해 주었네요.
자매는 영적 양식을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영적 양식으로부터 유익을 얻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해야 한다고 했죠.
바쁘게 임명을 수행하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교훈입니다.
청소년 여러분, 이 시리즈가 여러분이 다양한
임명을 목표로 삼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영적 가족인 우리 모두는
좋은 소식을 전할 때나
형제들을 격려할 때 새 힘을 주는 말을 합니다.
그 모습을 보여 주는 뮤직비디오를 함께 보시죠.
노래의 제목은 「달콤한 한마디」입니다.
무심하게 하신 그 말이
나의 마음을 콕 찌르네요.
조금만 예쁘게 말해 주면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아요.
아, 달콤한 그 한마디.
어머나, 센스가 넘치시네요.
꿀보다 더 달달한 한마디
지친 내 맘에 새 힘을 주네요.
지금 그 말이 참 듣고 싶었죠.
센스가 넘치시네요.
또 이 세상의 못난 말들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시나요?
내 맘에 좋은 걸 쌓아 둔다면
내 말들도 향기로워져요.
아, 달콤한 그 한마디.
어머나, 센스가 넘치시네요.
꿀보다 더 달달한 한마디
지친 내 맘에 새 힘을 주네요.
지금 그 말이 참 듣고 싶었죠.
한번 더 해주실래요?
달콤한 그 한마디.
어머나, 센스가 넘치시네요.
꿀보다 더 달달한 한마디
지친 내 맘에 새 힘을 주네요.
지금 그 말이 참 듣고 싶었죠.
센스가 넘치시네요.
이제 다음 순서입니다.
「영적 보물을 찾아 보세요」 시리즈의
일곱 번째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이번에는 나훔서에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지,
어떻게 더 많은 보물을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시죠.
이번 주 성경 읽기 한번 같이 해 볼까요?
나훔서에도 중요한 진리가 많이 들어 있어요.
맞아요. 여호와의 주권에 대한
내용도 나오더라고요.
음, 그럼 한번 시작해 볼까요?
「파수대」에서 제안해 준 것처럼 호기심을 갖고
성경을 천천히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좋아요, 너무 빨리 읽으면
놓치는 게 많아지는 것 같아요.
맞아요. 예를 들어서 1:1을
앞부분만 읽어 볼게요.
“니네베에 대한 선언.”
음, 그냥 지나쳤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까 니네베가 나오네요?
여호와께서 거기에 예언자 요나를
보내신 적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아시리아 사람들 때문에
겁을 먹고 도망가 버렸죠.
네, 그랬죠.
그럼 여호와께서 니네베에 관한
예언을 전하라고 하셨을 때
나훔은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요?
아마 정말 불안하고 두려웠을 거예요.
니네베가 어떤 곳인지 조사해 보니까
정말 그랬겠더라고요.
「색인」에서 “니네베”를 검색해서
“피흘림의 도시” 부분을 찾아봤어요.
좋네요. 「색인」을 사용하면
더 자세한 점들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색인」에 보니까 아시리아인들에 관한
이런 자료가 있더라고요.
그들은 “어린아이들을 산 채로
불태웠을 뿐 아니라 ...
사람들을 기둥에 못 박거나
산 채로 가죽을 벗기고 눈을 멀게 했으며
사지를 절단하거나
귀와 코를 자르기도 했다.”
와, 불안한 정도가 아니었겠네요.
근데 나훔만 그런 건 아니었을 것 같아요.
연대표를 보면 나훔이
예언했던 때는 요시야왕 때였는데
요시야왕은 적극적으로
거짓 숭배를 없애려고 했잖아요.
참숭배를 회복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요시야왕과 이스라엘 백성들도
좀 불안해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맞아요. 그때 아시리아는 원하는 건
뭐든 다 하는 강대국이었으니까요.
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아시리아를 자극하지 않을까?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우리도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거 아니야?’
하고 걱정했을 거예요.
우리 딸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해 봐요.
그러게 말이에요.
근데 여기 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자신의
주권을 어떻게 행사하시는지 알려 주시는데
“분노하기를 더디 하고
능력이 크신 분”이라고 했어요.
조사를 좀 해 보니까
여호와께서 자신이 분노하기를 더디하고
능력이 크다는 걸 함께 언급하신 곳은
성경 전체에서 여기뿐이에요.
아마 그분은 백성들이
아시리아의 위협이 아니라
그분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길
원하셨던 것 같네요.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거기에 더해 15절에서
이렇게 위로가 되는 말씀을 해 주세요.
“네 축제를 지키고 네 서원을 이행하여라.
쓸모없는 사람이 다시는
네 가운데를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완전히 멸망될 것이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선 내가 아직
아시리아를 멸망시키진 않았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나를 섬기라고 하신 거죠.
날 믿어 보라고 하신 거네요.
맞아요. 그리고 실제로도
니네베를 철저히 멸망시키셔서
어떤 학자들은 니네베라는 도시가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요시야와 나훔과 백성들이
정말 안심이 됐겠네요.
행복하고 평화롭게 여호와를
섬길 수 있었을 거 같아요.
여호와의 통치 방식에 초점을 맞췄을 때
불안감이 확신으로 바뀌었을 거예요.
음, 그거 정말 멋진 교훈인데요?
좀 적어 놓을게요.
여호와의 통치 방식은 우리에게 확신을 준다.
그리고 이 점을 통해 여호와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해 주시는지 알 수 있어요.
네, 여호와께서 주권을 행사하시는 방식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 주니까요.
이 말이 계속 생각나요.
“여호와는 분노하기를 더디 하고
능력이 크신 분이다.”
여호와께서 아시리아처럼 잔인하고 폭력적인
사람들에게도 분노하기를 더디하셨다면,
저한테는 더 그렇게 해 주시지 않을까요?
나는 잘못을 할 때마다
‘여호와께서 나를 포기하시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기록을 묵상하면서
여호와께서 사랑 많고 참을성 많은
아버지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됐어요.
여호와께서 그동안 내 잘못을
많이 참아 주셨어요.
그걸 생각해 보면 그분이 나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신다는 확신이 들어요.
맞아요.
다른 사람보다 나 자신이 나를 가장 가혹하고
무자비하게 판단할 때가 있잖아요.
하지만 여호와께선 그러지 않으시죠.
여호와께서 나에게 분노하기를 더디 하신다면
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호와의 시각으로
나를 보기 위해 노력해야겠어요.
또 가정이나 회중에서 권위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자문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분노하기를 더디 하나?
여호와께선 어떻게 생각하실까?
성급하게 화를 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면서 누굴 떠올리실까?’
좋은 점이네요.
또 여호와의 능력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어요.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죠.
아시리아 사람들은 여호와와 비교했을 때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우리도 사탄의 세상에 포위되어 있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여호와께서 강력한 힘으로
나를 도와주실 테니까요.
어떤 시련을 만나든
내가 얼마나 약한지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얼마나 강하신지에 초점을 맞추면
두려워하지 않게 될 거예요.
음, 그러네요.
난 jw.org에 나오는 경험담도 챙겨 보려고 해요.
지금 박해를 인내하고 있는
형제자매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여호와께서 나도 똑같이
도와주실 거란 확신이 들어요.
그 형제자매들의 본은
그분이 지금도 자신의 백성을 돕기 위해
강력한 능력을 사용하신다는 증거죠.
그분은 정말 “분노하기를 더디 하고
능력이 크신 분”이세요.
지금까지 이렇게 적어 놨는데
같이 한번 볼래요?
호기심을 갖고 천천히 읽기,
「색인」 찾아보기,
여호와의 주권 행사 방식을 살펴보면서
그분에 관해 묵상해 보기.
또 이런 점도 조사해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니네베가 멸망될 거라는
나훔의 예언은 다 이루어졌는데,
어떤 세부점들이 있었을까요?
음, 그거 좋은데요.
같이 한번 찾아볼까요?
이번 달 방송에서 여호와께서
우주에서 가장 사랑 많은 아버지이시라는 점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그분의 영적 가족 안에
머물러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특성인
사랑을 길러야 합니다.
사랑은 형제자매들과 “완전한 연합”을
이루게 해 주는 “띠”이기 때문이죠.
또 우리는 영적으로 계속 발전하면서 조직을
지원하는 다양한 임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시련을 겪을 때
여호와께서 우리의 아버지이고 반석이시라는
믿음을 결코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이번 달에는 가봉으로 가 보겠습니다.
가봉은 아프리카 중부 서해안에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낙원’이라고도 불리는
가봉은 멋진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데
국토의 85퍼센트가 열대 우림입니다.
또 장엄한 쿵구 폭포도 볼 수 있죠.
로앙고 국립 공원에서는 해안선을 따라
걸어 다니는 코끼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숲 코끼리들은 가봉에 가장 많이 사는데
세계적으로는 멸종 위기종이죠.
또 가봉에는 고릴라와
알록달록한 색의 맨드릴개코원숭이,
침팬지도 살고 있습니다.
해양 생물들도 많이 살고 있는데
20종이 넘는 돌고래와 고래들이 있습니다.
그 멋진 고래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죠.
하지만 가봉북살무사처럼
위험한 동물들도 있습니다.
이 뱀은 독사들 중에
가장 긴 독니를 가지고 있는데,
길이가 무려 5센티미터에 달합니다.
다행히도 성격이 온순해서
사람을 무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수도 리브르빌은 해방된 노예들이
19세기에 세웠습니다.
이곳에는 현대적인 건축물과
공원과 아름다운 해변이 있죠.
가봉 남동부에 있는 프랑스빌을 지나면
푸바라 폭포와 같은
멋진 자연 경관을 볼 수 있습니다.
1957년에 콩고 공화국 출신의 두 형제가
일자리를 찾아 가봉 남부 지역을 지나가던 중에
앙투안 무방가라는 남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는 빠르게 발전해서 같은 해 6월에 침례를 받고
가봉 최초의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때쯤 몇몇 형제들이 콩고에서
가봉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형제들은 무방가 형제와 함께 봉사를 시작했고,
오두막을 빌려서 집회도 열었습니다.
토요일에는 오후마다 공개 강연을 열기 위해
야외에 긴 간이 의자를 설치했는데,
그래서 “의자 교회”라는 별명을 얻었죠.
1964년에는 법적 인가를 받았고,
이후에 선교인들이 도착했습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형제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라디오로 성경 강연을 방송했습니다.
1970년 4월에 정부는 갑자기 전파 활동과
집회를 금지하고 선교인들을 추방했습니다.
하지만 형제자매들은 금지령 기간에도
대단한 열심을 나타냈습니다.
밤에 비밀리에 모여서
집회와 대회를 열기도 했죠.
시간이 흐르자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형제들은 왕국 회관을 짓고
크고 작은 대회들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라디오 방송도 시작했죠.
라디오 방송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2004년에는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방송을 진행하는 한 형제는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알아들었고,
그걸 계기로 성서 연구가
시작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가봉에는 4600명이 넘는
전도인들이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프랑스어, 팡어, 미에네어,
푸누어, 은제비어, 테케어 등 여러 언어로
8000건이 넘는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죠.
최근에는 28명의 젊은 형제자매들이 가봉에서
처음으로 열린 왕국 전파자 학교에 참석했습니다.
이 학급은 리브르빌의 오칼라에 있는
확장이 가능한 왕국회관에서 열렸습니다.
오칼라 회중의 열심 있는 116명의 형제 자매들이
140건 이상의 성서 연구를 보고해서
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기념식에는 287명이 참석했죠.
오칼라 회중 형제자매들이
여러분에게 따뜻한 사랑과 안부를 전합니다.
지금까지 여호와의 증인의 세계 본부에서
JW 방송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