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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 방송—202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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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 방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번 달에는 우리의 생각을 조정할 때
얻을 수 있는 유익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두 가족이 대회에 참석한 대표자들에게 사랑을
나타낸 결과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도 살펴볼 것입니다.
또 여호와께서 그분의 조직과 우리를
어떻게 정련하시는지,
그러한 정련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것을 첫째 자리에 둘 때
어떻게 가족 모두가 유익을 얻게 되는지 볼 것입니다.
이제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연설의 제목은 “기억력을 지혜롭게
사용하십시오”입니다.
그런데 무엇은 기억하고 무엇은 기억하지
않을지 우리가 완벽히 제어할 수 있습니까?
사실 그건 불가능하죠.
하지만 무엇에 대해 생각할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연설에서는 여호와께서
어떻게 기억력을 사용하시는지,
사랑을 나타내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과
기억력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무엇을 기억하기로 선택하실까요?
이제 히브리서 6:10을 읽어 보겠습니다.
10절.
“하느님께서는 불의하지 않으시므로, 여러분이
거룩한 자들을 섬겼고 지금도 섬기면서 행한 일과
그분의 이름을 위해 나타낸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여호와께서 무엇을 기억하신다고요?
우리가 한 선한 일을 기억하기로 선택하십니다.
영문 「신세계역」의 연구 노트에서는
“하느님이 보시기에 …
충성스러운 종이 하는 선한 일에
관심을 갖기를 중단하거나
소홀히 여기는 것은 불의한 행동이다”라고
알려 줍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얼마나
관심이 많으신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분은 우리에 관해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한 실수와 잘못까지 말이죠.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런 것들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십니다.
예를 들어 보죠.
기억은 도서관에 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책에는 우리가 한 실수와 잘못이 적혀 있고,
또 어떤 책에는 우리가 한
선한 일들이 적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책의 내용을 다 알고 계시죠.
또 우리의 실수가 적힌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도 아시지만,
그런 책이 아니라 우리가 한 선한 일이
적혀 있는 책들만 읽기로 선택하십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본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6:10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 기억하시는 두 가지 점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위해
나타낸 사랑입니다.
우린 하느님의 이름을 지닌 백성으로서
그분의 이름에 영예를 돌리는 일을
큰 책임이자 특권으로 여깁니다.
우리의 말, 옷차림, 행동으로 하느님의 이름에
영예를 돌릴 수도 있고 그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0:31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라고 권합니다.
우린 하느님의 이름을 신성하고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 원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을 사랑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분의 이름과 왕국의 좋은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봉사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봉사 나가기 전에 시간을 내서 준비하죠.
또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에 더해서
도움이 될 만한 구체적인 점들을
알려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 어떻게 해 볼 수 있을까요?
일상생활 중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공식 증거를 하고, 개인적인 목표를 세우고,
가능한 경우라면 매주 봉사에 참여할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좋은 소식을 위해
모든 일을 하고”,
여호와와 그분의 이름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10에서 여호와께서 기억하시는
두 번째 점을 확인해 보시죠.
성구에선 “거룩한 자들을 섬긴” 일을
기억하신다고 했는데요.
여기서 “거룩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부음받은 형제들을 말합니다.
당시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름부음받은
형제자매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섬겼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도와주기도 했죠.
그래서 바울은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형제자매들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해 온 그들을 칭찬했습니다.
히브리서 6:10의 원칙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됩니다.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친절한 행동에 기쁨을 느끼죠.
그런데 사람들에게 친절을 나타내고 좋은 것들을
줄 때 우리는 더 큰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줄 수 있는
것들은 정말 다양합니다.
자연재해나 질병, 박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음식이나 옷처럼 필요한 것들과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는 회중 형제자매들을
칭찬하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그에 더해 우리가 형제자매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바로 기도입니다.
상황이 어떻든 우리는 잠언 3:27에 나오는
이러한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함께 보시죠.
3장 27절.
“네게 도울 능력이 있거든, 네가 선을 베풀어야
할 자들에게 선을 베풀기를 주저하지 마라.”
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행한 이런 일들을
기억하십니다.
그분을 본받을 때 우리도 기억력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겪는 한 가지 어려움은
잊고 싶은 일들까지 기억하게 된다는 겁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거나 상처를 받았을 때
더 그럴 수 있죠.
나쁜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기분이 계속 좋지 않고,
도저히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이제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시죠.
먼저 다윗왕과 시므이의 사례입니다.
사울왕의 친척이었던 시므이는 다윗이
사울의 가문에게서 왕권을 빼앗았다고 생각해서
오래도록 다윗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16장을 보면 시므이는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게 돌을 던지고
흙먼지를 뿌리면서 그들을 저주했습니다.
그러한 행동은 다윗을 심하게 모욕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다윗의 부하인 아비새가
그를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아비새를 제지했죠.
직접 복수하려고 하지 않고 겸손하게
여호와께 문제를 맡긴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고 자제를 나타낸
아주 훌륭한 본이죠.
나중에 다윗이 다시 돌아왔을 때
시므이가 찾아와 용서를 구했습니다.
또다시 아비새는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다윗은 아비새를 제지했습니다.
시므이에게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죠.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문제를 처리한 방식을 보고
아주 기뻐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다윗이 죽기 전에 솔로몬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열왕기상 2:8, 9을 읽어 보겠습니다.
“또 바후림 출신으로 베냐민 사람인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다.
내가 마하나임으로 가던 날에
그가 심한 독설로 나를 저주했지만,
그가 요르단강으로 나를 맞이하러 내려왔을 때,
내가 여호와를 두고 그에게
‘내가 그대를 칼로 죽이지 않을 것이오’ 하고
맹세했다.
그러나 이제 그를 처벌하지 않은 채
그냥 두지 마라.
너는 지혜로운 사람이니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이다.
그의 백발이 피에 물들어 무덤으로
내려가게 해야 한다.”
시므이가 다윗을 모욕했을 때
다윗의 나이는 아마 60대 초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70세에 죽었죠.
그러니까 약 10년이 지났어도 다윗은 시므이가
한 일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던 겁니다.
성경은 다윗이 왜 그렇게 했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기록을 통해 누군가가
우리를 불친절하고 불공정하게 대했을 때,
그 기억을 떨쳐 버리기가 어렵고 그 상처가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문제에 잘 대처했다 하더라도 말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그러한 기억을 떨쳐 버리고
올바른 태도를 나타낼 수 있습니까?
예수와 베드로의 사례를 통해
그 답을 알아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체포되시던 밤에 베드로는
절대 그분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몇 시간도 안 돼서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죠.
한번 생각해 보시죠.
그날은 예수의 지상 생애 중에
가장 힘든 날이었습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그 순간에 친한 친구인
제자들과 베드로가 그분을 버린 것입니다.
심한 죄책감을 느낀 베드로는
감정이 북받쳐 몹시 울었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부활되신 후에
베드로를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고린도 전서 15:5을 보면
그분은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나무라셨습니까?
그에게 실망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점을 알아보기 위해
마가복음 16:7을 보겠습니다.
이 성구에서 예수의 무덤을 찾아온
여자에게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 가서 그분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그분은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며,
전에 말씀하신 대로 거기서 여러분은
그분을 뵙게 될 것입니다’ 하고 말하십시오.”
이 구절의 연구 노트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 나타나시기 전에,
베드로가 혼자 있을 때 그에게
먼저 나타나셨던 것 같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그처럼 자신에게
개인적 관심을 나타내신 것과
천사의 말에 자신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을 통해,
자신이 예수와의 관계를 세 번 부인한 것을
그분이 용서하셨다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때 베드로가 얼마나 안심이 되었겠습니까.
예수께서 베드로의 잘못을 잊으신 건 아니었죠.
하지만 그분이 기억하기로 선택한 것은 베드로의
잘못이 아니라 그가 가진 좋은 특성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용서하신 것에 더해
그에게 중요한 임명도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정말 훌륭한 본이 아닙니까?
우리도 친구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예수께서 남기신
본을 따라 기억력을 지혜롭게 사용해야겠습니다.
기억력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되는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다시 다윗의 예를 생각해 보죠.
그는 여호와께서 그를 도와주고
구출해 주셨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러한 기억들은 그가 더 큰 시련을
이겨 내는 데 도움이 되었죠.
시편 27편 2절과 3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한 자들이 내 살을 삼키려고 나를 공격했으나,
내 적대자와 원수들이 비틀거리다 쓰러졌습니다.
나를 대적하여 군대가 진을 칠지라도
내 마음은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대적하여 전쟁이 일어날지라도
나는 확신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이 뭐라고 했죠?
“내 마음은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확신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을 본받아 기억력을 지혜롭게 사용한다면
우리도 다윗과 같은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시련을 겪을 때 여호와께
도움을 요청한 적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시련을 이겨 낼 힘과 지혜를
주시고 옆에서 도와주시는 것을 느꼈습니까?
그 기억을 잊지 마세요.
여호와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분이 산과 같은 장애물을 없애 주셔서
정말 바라 왔던 영적 목표를 이룬 적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그 기억도 잊지 마세요.
네, 우리는 많은 기억을 쌓으면서 살아갑니다.
형제자매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
그들이 가진 좋은 특성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이 한 훌륭한 일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반감이나 질투 같은 감정은 버리고, 사랑과 자비
같은 좋은 특성들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하죠.
또 여호와께서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어떻게 도와주셨는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살펴본 것처럼 기억력을 지혜롭게 사용한다면
그 어떤 시련이 닥친다 해도
이겨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 시대뿐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기억력을 지혜롭게 사용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중에는 돈 슈웨닝 형제가 있습니다.
형제는 조직상의 변화를 많이 경험했는데요.
그 기억을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요?
영상을 함께 보시죠.
여호와의 조직의 현대 역사는
성장과 발전과 변화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도 그런 변화를 직접 많이 겪었어요.
때로는 겁이 날 때도 있었지만 그런 변화는
흥미진진했고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구리”가 “금”이 되는 걸 봤죠.
제 이름은 돈 슈웨닝입니다.
여호와를 섬긴 지는 70년이 넘었는데
이제 막 시작한 거죠, 뭐.
아버지는 직장 동료에게 진리를 배우셨어요.
얼마 후엔 가족이 다 같이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죠.
그건 저희 가족한테 큰 변화였어요.
하지만 형제자매들이 환영해 주고
가족처럼 대해 줘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죠.
집회에 가는 게 정말 좋았어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어떤 변화는 받아들이기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처음 「신세계역」이 나왔을 때
받자마자 참 좋은 변화라고 느꼈죠.
너무 좋아서 그때부터
매일 한 장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전에 보던 킹 제임스 성경과는 다르게
아주 이해하기 쉬웠어요.
그 덕분에 여호와께서 가까이 갈 수 있는
살아 계신 하느님이라고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영적으로 잘 발전할 수 있었고
16살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18살이 되었을 때는 봉사의 종으로 임명됐습니다.
처음 맡겨진 일은
서적 연구를 사회하는 일이었는데,
그때 집단에 저보다 나이도 경험도 훨씬 많은
분들이 많이 계셔서 너무 부담이 됐어요.
이렇게 참석해 주신 분들 모두 환영합니다.
그럼, 어 ….
참 힘들었어요.
어떤 땐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죠.
항에 나오는 질문만 읽었어요.
형제자매들은 그렇게 긴장한 저를
이해하고 잘 도와줬어요.
여호와께서 제가 새로운 임명을
잘 수행할 수 있게 도와주신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런저런 변화가 많았지만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줬던 건
1972년에 있었던 변화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회중의 종이었는데
그때는 회중의 종으로 일하는 형제 한 사람이
회중을 인도하는 역할을 했죠.
그런데 회중에 장로의 회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지침을 받게 된 거예요.
그 지침이 이해가 안 가고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요.
제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었죠.
이 변화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또 여호와와 같은 시각으로
상황을 보기 위해 노력했죠.
그 덕분에 이 마련도 좋은 변화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여호와와도 더 가까워졌죠.
장로의 회가 구성돼서 더 많은 형제들이
회중을 돌보게 된 건 정말 잘된 일이에요.
여호와께선 이 마련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경험 많은 연로한 형제들, 활력 넘치는
젊은 형제들과 일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조언자가 많으면 성공한다”는 말씀은
정말 진리입니다.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예요.
여호와께서 변화를 가져오시는 건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죠.
처음엔 잘 모를 수 있지만요.
그래서 여호와를 잘 따라가야 합니다.
얼마 안 있어 가장 큰 변화도 겪게 되겠죠.
지금은 여호와의 증인의 현대 역사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때입니다.
젊은 분들이라면 그 중요한 시기를
절대 그냥 흘려보내지 마세요.
여호와의 조직에 대해 최대한 많이 알아보세요.
회중 활동을 열심히 해 보세요.
장로 형제들과 이야기해 보세요.
이 조직에서 해 볼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많이 해 보세요.
여호와의 인도를 받고 그분을 신뢰하면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미안하지만 먼저 좀 가 볼게요.
저도 아직 할 일이 많거든요.
지금은 장로의 회가 없는 회중을 상상하기 힘들죠.
하지만 그 마련이 처음 생겼을 때
형제는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형제는 그 문제에 대해 기도하고
그 변화에 어떤 유익이 있는지 생각해 본 결과
여호와의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두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특별 지역 대회에 참석한 대표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해서 어떤 유익을 얻었는지 함께 보시죠.
2015년에 저희가 살고 있는 메데인에서
특별 지역 대회가 열렸어요.
대회에 참석하는 대표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해 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하루 종일 일해도
모자랄 만큼 바빴어요.
아들은 11살밖에 안 됐었고, 아내는 많이 아팠다가
이제 막 회복하고 있던 중이었죠.
그래서 아내는 손님맞이까지 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어요.
우린 아쉽지만 이번에는 손님들을 초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아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아들을 영적으로 잘 기를 수 있게 도와달라고
여호와께 계속 기도했어요.
그리고 어떻게 아들이 여호와와 더 가까워지도록
도울 수 있을지도 많이 고민했죠.
그러던 중에 아내가 관대하신 여호와를 본받아서
형제자매들을 도와 보면 어떻겠냐고 말했어요.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고
형제자매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필요한 일들을 나눠서 하기 시작했죠.
저희 집에 묵게 된 손님들은
정말 사랑 많고 좋은 분들이셨어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 같았죠.
그분들이 영적인 것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면서 저희도 격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좋은 영적 습관을 유지해 오셨다는 걸
알 수 있었죠.
그 형제자매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아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어요.
어느 날 아들이 와서 이러더라고요.
“아빠, 할 얘기가 있어요.
진짜 중요한 얘기예요.”
그리곤 자기가 진심으로 여호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저 침례받고 싶어요.”
그 형제자매들이 저희 집에서 묵게 된 건
분명히 여호와의 인도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가깝게 지내요.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저희가 그분들을 만나러 간 적도 있죠.
대회 때 쌓은 추억이 정말 많아요.
형제자매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사랑을 나타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에요.
엄마랑 저는 후대를 나타낸 덕분에
기도의 응답을 받았어요.
그럴 거라곤 상상도 못 했죠.
저는 낯선 사람을 후대한 아브라함을
항상 본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특별 지역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저희가 살던 집이
그렇게 좋은 집은 아니었거든요.
먹고 자는 데 꼭 필요한
그런 기본적인 것들만 있었죠.
식탁도 진짜 작았어요.
그리고 문제가 하나 더 있었어요.
전 집에 손님들이 오는 게 싫었어요.
가족들한테 아무것도 안 도와줄 거라고 했죠.
그때 제 여동생은 증인이 아니었거든요.
전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을 갖는 데만 관심이 있었어요.
그때 전 외롭고 공허하고
그냥 행복하지 않았어요.
저희 집에 오신 부부는 정말 따뜻하고
겸손한 분들이었어요.
재밌고 사랑도 많고 다가가기 쉬운 분들이었죠.
저희가 어떤 음식을 드리든
항상 맛있게 드셔 주셨어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 부부는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 게
여호와를 섬기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됐죠.
엄마랑 언니가 그때 형제자매들을
집에 초대하기로 결정해 줘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 덕분에 훌륭한 형제자매들을 만나게 됐고
저도 여호와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으니까요.
전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죠.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2020년 3월 7일에 침례를 받았어요.
그 부부는 우리에게 영원히
함께할 친구가 되어 줬어요.
지금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요.
단체 채팅방도 있어요.
채팅방 이름이 “우리 가족”이에요.
그냥 좋은 추억 정도가 아니에요.
여호와께서 우리 가족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이에요.
보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도우면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고,
가족이 더 가까워지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기억이 다 즐거운 기억인 건 아니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실수를 한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모두 여러 번 걸려 넘어집니다”라는 제목의
다음 아침 숭배 영상에서 교훈을 얻어 보시죠.
우린 야고보서 3:2의
“우리는 모두 여러 번 걸려 넘어집니다”라는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문맥을 보면 이 말씀은 특히
우리가 말에 있어서 걸려 넘어지는 것을,
각주를 보면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동안 우리는 말을 조심하는 것과 관련해서
훌륭한 조언들을 많이 들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게 있었죠.
“말하기 전에 생각하십시오.”
“열까지 세고 말하십시오.”
“주의 깊이 들으십시오.”
그 밖에도 말을 잘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조언들이 많죠.
그런데 그런 조언들도 다 알고
실천해 보려고 노력도 했지만 무심코
상처 주는 말이 튀어나온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화를 내거나
불필요한 변명을 하신 적은요?
그랬다면 이런 생각이 드셨을 겁니다.
‘아, 그 말은 하지 말 걸.’
야고보가 말실수를 걸려 넘어지는 것에
비한 것은 정말 적절합니다.
우리가 길을 가다 넘어지면 창피해서
누가 보진 않았을까 하고 주위를 살피죠.
그리고 어느 정도 추스른 다음에는
어떻게 하십니까?
바닥을 보면서 뭐 때문에 넘어졌나 하고
확인하실 겁니다.
바닥에 뭐가 놓여 있었을 수도 있고 땅바닥이
울퉁불퉁해서 거기에 걸려 넘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딴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졌을 수도 있죠.
저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요.
계단을 내려가던 중에 다른 생각에 깊이 잠겨
있다가 발을 헛디뎌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또 드문 경우긴 하지만 누군가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일부러 발을 걸었을 수도 있습니다.
네, 이렇게 우리는 넘어지면 무엇 때문에
걸려 넘어졌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요.
이게 바로 오늘의 요점입니다.
우리가 걸려 넘어질 때마다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실수를 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뭐 때문에 내가 그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다음에 비슷한 일이 또 생기면
그땐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게 좋을까?’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자주 말실수를 하는지 안다면,
비슷한 상황이 또 생겼을 때 나중에 분명 후회할
말을 하지 않고 말을 잘 제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비슷한 말실수를 계속 반복해서 하고 있다면
그 실수로부터 배울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죠.
우린 의심, 두려움, 교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걸려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두 가지 상황을 살펴보면서
각각의 상황에서
어떻게 말실수를 피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상황은 가까운 사람을 대할 때입니다.
어떤 사람을 오래 알고 지내면 어느 순간
존중심 없이 대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구의 필자인 야고보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지 모릅니다.
예수를 형으로 둔 야고보는
예수와 함께 자라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요?
이렇게 생각했을까요?
‘아주 혼자만 잘났지.
자기가 완벽한 줄 아나 봐.’
뭐, 실제로 완벽하셨으니까요.
잘 아시다시피 야고보는
처음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예수와 함께 자랐기 때문일 수 있죠.
마가 3:21을 보면 예수의 가족들이
그분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읽어 드리죠.
“그분의 친족들은 그 일에 대해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그가 정신이 나갔다’고 말했다.”
연구 노트를 보면 이 말을 한 가족들 중에
야고보도 포함되어 있었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야고보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그는 부활된 예수를 만났는데,
함께 고린도 전서 15장을 보시죠.
15장 7절을 읽겠습니다.
“그 후에 그분은 야고보에게 그리고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야고보가 부활된 예수를 만나서
깊은 대화를 나누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야고보는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이전에 그분께 했던 말들을 정말 후회했을 겁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남들한테는 절대 하지 않을 말을
배우자에게는 하게 될 때가 있으신가요?
혹시 가족들이 나를 콕콕 찌르면서
신경을 건드리는 말만 골라서 한다고 느끼시나요?
그럴 때 나중에 후회할 말을 하게 되기 쉽죠.
그런데 혹시 그 사람이 가족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하셨을까요?
아니었겠죠.
그렇다면 내가 화가 났을 때 가까운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파악하고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는 거죠.
길이 울퉁불퉁하다고 해서
꼭 걸려 넘어지는 건 아닙니다.
잘 보고 그 문제를 피해 가면 되는 거죠.
두 번째 상황은
누가 날 함부로 대한다고 느낄 때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낄 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어떤 감정 때문일 수 있을까요?
질투심입니까?
무시당했다고 느껴서입니까?
이기심 때문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쌓인
분한 감정 때문입니까?
이렇게 상황을 잘 분석해 두면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낄 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고
다음번에는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린 어떤 상황에서
어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내 말을 안 들어 주는 것 같을 때
언성을 높이거나 소리를 치게 될 수 있습니다.
무시를 당한다고 느낄 땐
우리도 상대방을 무시하게 될 수 있죠.
거짓 비난을 받았다고 느낄 때는 자신이
옳다는 걸 증명하려고 거칠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말이 안 통한다고 느낄 때는
답답해서 아예 대화를 중단할지 모릅니다.
야고보서 3:14-18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긍정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는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야고보서 3:14-18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속에
심한 질투와 다툼이 있다면,
진리를 거슬러 우쭐대거나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위에서 내려오는 지혜가 아니라,
땅에 속하고 동물적이고 악귀적인 것입니다.
질투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무질서와 온갖 악한 일도 있습니다.
[여기가 중요한데요.]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를 이루고,
합리적이고, 기꺼이 순종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파적이지 않고, 위선적이지 않습니다.
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을 위해
평화로운 상태에서 심어집니다.”
따라서 누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미리 생각해 두십시오.
미리 머릿속으로 연습해 두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상대방을 잘 알고 있다면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가 거의 예상이 될 겁니다.
머릿속으로 대화를 해 보는 거죠.
처음엔 잘 안될 수 있지만 계속 연습하다 보면
결국 부정적인 반응을 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연습한 대로
대화가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죠.
그렇다 해도 이러한 연습은 분명 효과적입니다.
우리의 감정을 제어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를 이루는 일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머릿속으로 연습해 보고
과거에 자신이 보인 반응을 분석해 본다면
혀를 더 잘 제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넘어질 때마다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살펴봤죠.
그 점을 이해하는 데
야고보 3:6의 비유가 도움이 되는데요.
거기서 혀는 “불과 같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실수로 불을 낸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정말 속상하겠죠.
하지만 그 후에 불이 난 이유를 직접 찾아보거나
조사해 달라고 부탁할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 배우는 게 있겠죠.
불 위에 뭘 올려놓고
자리를 비우지 말아야 한다거나,
기름에 불이 붙었을 땐
물을 뿌리면 안 된다는 것처럼요.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은 것입니다.
말실수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황을 분석해 보고 다음번에는 어떻게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넘어질 때마다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실수한 기억을 계속 떠올리기보다는
그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나쁜 기억에서도 우리는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가장은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가족을 모든 면에서 잘 부양해야 하죠.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영적으로요.
이번 달 뮤직비디오에서 한 가장이
어떻게 균형을 잘 잡는지 보시죠.
제목은 「다시 힘을 내 보자」입니다.
자, 다시 힘을 내 보자.
그분께 맡기고 즐겁게 춤추자.
자, 다시 일어나 보자.
나의 하느님, 새 힘 주시니.
새 힘 주시니.
먹고사는 게 쉽지가 않아.
가족들은 나를 바라봐.
이걸 해 볼까 저걸 해 볼까?
좋은 것들만 해 주고 싶은데.
잠깐, 내가 지금 뭘 걱정하는 걸까?
오, 여호와는 항상 우릴 돌보셨지.
자, 다시 힘을 내 보자.
그분께 맡기고 즐겁게 춤추자.
자, 다시 일어나 보자.
나의 하느님, 새 힘 주시니.
자, 다시 힘을 내 보자.
나의 하느님, 새 힘 주시니.
자, 다시 일어나 보자.
가장의 무게 견뎌야 할 땐
가끔 남몰래 울고 싶어져.
내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을
여호와는 다 알고 계시지.
잠깐 지금 멈춰서 기도를 드릴까?
오, 여호와는 항상 우릴 돌보셨지.
자, 다시 힘을 내 보자.
그분께 맡기고 즐겁게 춤추자.
자, 다시 일어나 보자.
나의 하느님, 새 힘 주시니.
자, 다시 힘을 내 보자.
나의 하느님, 새 힘 주시니.
자, 다시 일어나 보자.
나의 하느님, 새 힘 주시니.
그분께 맡기고 즐겁게 춤추자.
오늘도 힘을 내 보자.
나의 하느님, 새 힘 주시니.
가장 여러분, 여호와께선
여러분의 수고를 모두 보고 계십니다.
어려움도 있겠지만 계속 힘을 내서 가족을 돌본다면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가족이 행복하게
그분을 섬기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동안 「영적 보물을 찾아 보세요」에서
성경 읽기를 통해 유익을 얻는 방법을 알아보셨죠.
이제 히브리어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를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어떻게 우리를 “정련”하시는지
생각해 보시죠.
와, 벌써 소예언서 마지막 책 살펴볼 차례네요.
그러네요.
이번 가족 숭배 프로젝트도 끝나 가네요.
난 특히 소예언서들이 각각 어떤 배경에서
기록됐는지 살펴본 게 좋았어요.
나도요.
그럼 말라기서에서는 어떤 점이 좋았어요?
말라기서는 히브리어 성경의 제일 마지막 책인데,
실제로도 제일 마지막에 기록됐더라고요.
여호와께서 그동안 그렇게 많은
예언자들을 보내고 시정해 주셨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악한 행실로 돌아갔어요.
맞아요.
처음 두 장이 당시 상황을 잘 보여 줘요.
사람들은 여호와를 무시하고
다리를 저는 동물을 제물로 바쳤어요.
이방인 여자와 결혼하려고
아내를 버린 사람들도 있었죠.
제사장들은 그 모든 걸 보고만 있었고요.
나였으면 그런 사람들을
진작 포기해 버렸을 거 같아요.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말라기를 보내셨죠.
난 읽다 보니까 눈에 띄는 표현들이 있더라고요.
성구에서 왜 그런 특정한 표현들을 사용했는지
생각해 보면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어요.
어떤 표현이 눈에 띄었어요?
3장 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정련하는 자처럼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어요.
여기서 “정련” 그리고
“앉아서”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어요.
음.
이 단어들을 「온라인 라이브러리」에서
조사해 보다가 이런 자료를 찾았어요.
“고대에 연단하는 [그러니까 정련하는]
공정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므로, 연단하는 사람은 흔히 ‘앉아서’,
액체 상태의 금속이 고도의 광택을 내는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여
그로부터 자기 모습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여호와께서 바로 그렇게 하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련을 겪게 허용하시고
계속해서 예언자들을 보내 시정해 주셨죠.
참을성 있게 영적으로 정련해 주신 거예요.
그러네요.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이 그분을 실망시켜도
그들을 가혹하게 대하거나
쉽게 포기하지 않으시죠.
그분은 앉아서 정련하는 사람처럼
그분의 백성을 참을성 있게 정련해 주세요.
우린 성경의 말씀이나 형제들의 조언, 그리고
우리가 겪는 시련을 통해 정련을 받게 되죠.
조언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수 있고 생각보다
더 오래 시련을 겪게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모든 일로 우리는 정련될 거예요.
맞아요.
그럼 이 내용을 통해 여호와에 대해
어떤 점을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여호와께선 우리의 잠재력을 아시니까
우리를 정련해 주시는 거예요.
그 과정은 좀 힘들 수 있지만요.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우릴 정련하시는 건
처벌이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라는 거죠?
그쵸.
사실 말라기서도 “나는 너희에게 사랑을
보여 왔다”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시작되잖아요.
맞아요.
그리고 2018년 「파수대」에
이런 좋은 질문들이 나오더라고요.
“이 부분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음, 묵상해 보기 좋은 질문들이네요.
조언을 들으면 기분이 좋진 않잖아요.
근데 그럴 때 여호와께서
우릴 사랑하셔서 조언해 주시는 거라고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더 쉬울 것 같아요.
그분은 우리도 모르는
우리의 잠재력을 아시니까요.
난 이렇게 자문해 보게 되네요.
‘난 여호와의 정련을 잘 받아들이고 있나?
나한테 부족한 특성을 발전시키게 도와달라고
얼마나 자주 기도하지?
성경이나 조직의 조언을 무시하지 않고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나?
시련을 겪을 때 그 시련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서 속상해하나?
아니면 온화나 참을성 같은 좋은 특성들을
기를 기회로 여기나?
여호와께서는 나에 대해
어떤 점을 알려 주고 싶어 하실까?’
금속을 높은 온도로 오랫동안 가열하면
불순물이 분리되잖아요.
시련이나 박해, 어려움도 오래 지속되다 보면
우리도 몰랐던 약점이나 속마음이 드러나게 돼요.
나도 그런 적이 있어요.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후회할 말도 하고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내가 그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어요.
그것보다는 더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때 나 자신한테 실망했어요.
맞아, 그럴 때가 있죠.
그래서 이 성구 표현이
위로가 많이 되는 거 같아요.
여호와께서는 시련을 겪을 때
우리의 불완전성이 드러날 거라는 걸 아세요.
하지만 그 불완전성이 아니라
좋은 점에 초점을 맞추시죠.
그러니까 약점이 드러날 때 우리도 포기하지 말고
그 약점을 극복할 기회로 생각해야겠어요.
네, 여호와께서 우리의 가능성을 보시니까
포기하지 말아야겠네요.
우리가 그분을 본받아서
좋은 특성을 나타내면 정말 기뻐하실 거예요.
그리고 다른 사람을 볼 때도
여호와를 본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점이 아니라 좋은 점을 보려고 하는지,
그 사람이 완전해진 모습을 상상하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네요.
좋네요.
여호와의 시각으로 사람들을 보면
나한테는 좀 거슬리는 특성도
어떤 일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겠네요.
우리 둘 다 실수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도 서로의 단점이 아니라
장점에 초점을 맞춰야겠어요.
우리도 계속 여호와를 본받아서
더 나아질 서로의 모습을 생각해 주기로 해요.
그래요.
성구 하나 가지고 진짜 많은 얘기를 나눴네요.
그러니까요.
오늘 가족 숭배 참 좋았어요.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고,
특정 표현을 조사해 보고,
적용점을 묵상해 보니까 좋네요.
말라기서가 메시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살펴보고 싶어요.
이 책에도 중요한 예언들이 참 많잖아요.
그쵸.
말라기는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마지막 예언자였어요.
그는 침례자 요한에 대해 예언했고,
침례자 요한은 예수의 길을 준비했죠.
말라기서는 지금 우리에게도
정말 중요한 책이에요.
또 말라기서는 여호와께서
여자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
그리고 “특별한 재산”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알려 줘요.
더 알아볼 게 참 많아요.
지금까지 소예언서들을 살펴봐서 좋았어요.
여호와의 사랑, 자비, 능력 같은 특성들이랑
그분이 우리에게 얼마나 관심이 많으신지
배울 수 있었죠.
여호와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게 됐어요.
앞으로도 성경을 계속 더 깊이 연구해 봐요.
여호와께서는 참을성 있게 조직과 우리 각자가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정련해 주십니다.
이렇게 자문해 보세요.
‘여호와께선 내가 좋은 특성을 기르도록
어떻게 정련해 주고 계실까?’
「영적 보물을 찾아 보세요」 시리즈 덕분에
12개의 예언서를 자세히 알아볼 수 있었죠.
이처럼 유익한 동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촬영팀은 세트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마을, 현대식 건물 등
여러 장소가 필요하죠.
세트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셨나요?
함께 보시죠.
영상을 만드는 목적은 교훈을 주기 위한 겁니다.
그러려면 사람들의 마음에 이르게 해야 하죠.
또 화면에 보이는 것들이
실제적으로 보이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촬영을 실제 장소에 가서 할지,
아니면 세트장을 지어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헌금을 사용해서 하는 일이니까 비용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죠.
우리 형제자매들이 보내 준 소중한 헌금이기 때문에
세트장을 지을 때
헌금이 낭비되지 않게 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세트장을 지을지 결정하기 전에
촬영할 만한 실제 장소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죠.
형제자매들의 집을
잠시 빌려서 촬영을 할 때도 있고,
허가를 받아서 공공장소에서
촬영을 하기도 합니다.
또 베델 시설을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한번은 병원 장면이 필요했는데,
세트장을 지을지
실제 병원에 가서 촬영을 할지 고민하던 중에
베델에서 병실처럼 보이는 창문을 발견한 겁니다.
그래서 거기서 촬영을 했고 갓난아기 장면은
짧은 영상을 구매해서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꼭 필요했던 장면을 완성했죠.
어떤 경우에는 마땅한 촬영 장소를 찾을 수가
없어서 세트장을 직접 짓는 것을 고려합니다.
세트장을 짓기로 결정하면
세트장이나 소품 디자인을 담당하는 형제가
팀과 함께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논의합니다.
촬영을 감독하는 형제는 팀과 함께
촬영할 장면과 화면 구도를 결정하고 정리합니다.
덕분에 디자인 팀은 각 장면에 무엇이 나오는지,
어느 부분이 카메라에 비춰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상에 꼭 필요한 것들만 만들 수 있죠.
보통 건물을 지을 때는
오래 사용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근데 세트장을 짓는 건 다르죠.
빨리 만들었다가 빨리 철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잘 만들어야 하겠지만 오래 쓸 건 아니죠.
겉보기엔 진짜처럼 보이지만
보통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주방을 만들 때 외관은 진짜 주방처럼
보여도 서랍이나 문은 열리지 않죠.
계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계단이 나 있어서 위층에
공간이 더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없죠.
그러면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어요.
세트장을 만들 때 나무 패널을 자주 사용하는데요.
이 패널들은 미리 만들어 놓을 수 있고
설치도 금방 할 수 있죠.
촬영이 끝나도 패널은 폐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패널에 페인트를 칠했거나 장식을 달았다면
촬영이 끝난 후에 표면에 있는
나무판을 떼어 냅니다.
철심이나 못도 모두 떼어 내죠.
그런 다음 얇은 나무판을 새로 붙입니다.
그럼 이제 패널을 다시 사용할 수 있죠.
그렇게 해서 9년 넘게 사용한 패널도 있습니다.
세트를 처음 지을 때부터 나중에 다시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지 검토합니다.
예를 들어 「“오 여호와여 ··· 내가 당신을
신뢰합니다”」 드라마를 촬영할 때,
세트장 자재를 최대한 재활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재들을 사용하고 있죠.
저희는 자재를 다양한 방법으로
오래 사용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요시야 드라마 세트장은 느헤미야
드라마와 다윗 동영상을 찍을 때도 사용됐습니다.
현대 교실 장면을 촬영하는 데 사용된 한 세트장은
오래전 교실 장면과 남아메리카의
가정집 장면을 촬영하는 데도 사용되었죠.
또 왕국회관 세트를 하나 만들어서
여러 프로젝트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이 세트장은 실제 왕국회관보다 작게 제작됐는데,
30명 정도만 있어도 어느 정도 꽉 차 보이는 크기죠.
왕국회관 뒤편에 있는 방은
다른 장면을 촬영할 때도 사용해요.
침실처럼 꾸며서 활용하기도 하고
인터뷰 장소로 쓰기도 하죠.
한번 사용한 세트를 다음에 다시 사용할 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신경을 많이 써요.
그래서 소품이나 가구를 잘 배치하는 게 중요해요.
몇 가지에만 변화를 줘도
완전히 다른 세트장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죠.
물론 멋있는 세트장을 새로 만드는 것도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도 좋은 아이디어로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할 때 더 보람을 느끼죠.
창의적이고 재능 많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그들은 평범해 보였던 장소를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카메라에 아주 멋지게 담길 수 있게요.
우리가 이 모든 일을 하는 건
전 세계 형제자매들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정말 멋진 일이죠.
수고하고 있는 형제자매들이 정말 많네요.
앞으로 우리 동영상을 볼 때
세트장을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형제자매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이번 달에는 기억력을 지혜롭게 사용해서 여호와를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변화를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고,
여호와의 정련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치기 전에 이번 달에는 캄보디아로 가 보겠습니다.
동남아시아에 있는 나라인 캄보디아에서는
다채로운 문화와 맛있는 요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북적이는 시장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구합니다.
또 아모크트레이라는 음식을 즐겨 먹는데
생선 카레를 바나나잎에 싸서 만든 요리죠.
도시 지역을 벗어나면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습니다.
북동부에서는 많은 폭포를,
야생 동물 보호 구역에서는 아시아코끼리와
큰따오기 같은 동물들을 볼 수 있죠.
또 아름다운 연꽃은 나라 어디에나 피어 있습니다.
캄보디아는 지르콘이라는 보석의 산지입니다.
지르콘 원석에 높은 열을 가하면 특별한 푸른빛을
내는데, 이 색깔을 라타나키리블루라고 부르죠.
1950년대 후반에 캄보디아에 온 선교인들이
전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1965년에는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 때문에
조지 크로퍼드, 캐럴린 크로퍼드 부부 같은
선교인들이 캄보디아를 떠나야 했습니다.
심지어 한동안은 종교 활동을 완전히 할 수 없었죠.
그래서 캄보디아에는 약 25년 동안
증인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캄보디아의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1993년에 여호와의 증인은 법적 인가를 받았고
선교인들도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33년이 지난 지금은
1200명이 넘는 전도인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수백 명의 외국 형제자매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캄보디아의 아름다운 환경과
행복하고 정직하게 사는 캄보디아 사람들에
이끌려 이곳에서 봉사하기로 결정했죠.
현재 캄보디아에서는 1400건이 넘는
성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왕국 전파자 학교가 열렸습니다.
20명의 형제자매가 이 학교를 통해
유익을 얻었습니다.
그중에는 1999년에 길르앗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다시 한번 그와 같은 신권 교육을 받기를 원하던
한 선교인 부부도 있었죠.
젊은 캄보디아 형제자매들은 경험 많은 선교인들과
함께 수업을 받으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졸업생 중 두 명은
츠바암퍼우 회중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회중은 약 12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스바이리엥이라는 외딴 구역을 돌보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집단은 화상으로 연결해서 집회를 즐기며,
츠바암퍼우 회중 전도인들은 주기적으로 그곳을
방문해서 형제자매들을 격려하고 함께 봉사합니다.
츠바암퍼우 회중 형제자매들과
스바이리엥 집단 형제자매들이
여러분에게 사랑과 안부를 전합니다.
다른 지역의 형제자매들이 충실하게
여호와를 섬기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납니다.
지금까지 여호와의 증인의 세계 본부에서
JW 방송이었습니다.